트럼프 행정명령에 ‘관세 폭격’ 본격화
볼트·스프링 등 파생상품 253개 포함
제철소 건설 등 ‘당근’ 제시에도 강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4일 워싱턴 DC의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12일부터 미국에 수출되는 한국산 철강·알루미늄에 25%의 관세가 매겨졌다. 한국도 ‘트럼프발 관세 폭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탄핵정국에 따른 리더십 공백으로 적극적인 협상이 어려운 실정이라 당분간 관세 폭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오후 1시1분(미 동부시간 기준 0시1분)부터 미 현지에서 통관 절차를 밟는 철강·알루미늄과 볼트·너트, 스프링 등 파생상품 166개에 대해 가격 기준으로 25% 관세를 부과했다. 파생상품 중 범퍼·차체·서스펜션을 비롯한 자동차 부품과 항공·가전 부품 등 87개 품목은 철강·알루미늄 함량에 따라 관세가 매겨졌다.
정부는 이날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민관합동 미 관세조치 대응전략 회의’를 열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산업부는 1월 말부터 비상대비 태세를 갖추고 업계와 밀착 소통해왔다”면서 “미국과 고위급 및 실무협의를 밀도있게 진행하고, 주요국의 대응 동향을 모니터링해 우리 산업계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13일 미국을 찾아 미 무역대표부(USTR)의 고위관계자 등을 만난다. 한미 공급망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면서 국내 산업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비상대응’을 강조하고 있지만 트럼프발 관세폭탄의 현실화는 향후 협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앞서 지난달 안 장관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 한국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청한 바 있다. 당시 한국이 제시한 ‘협상카드’는 여러가지였다. 안 장관은 미국이 군함과 탱커, 쇄빙선 등을 대량 주문할 경우 미국 물량을 우선 제작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해 러트닉 장관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냈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해 미국과 실무협의체도 꾸린 상태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지에 10조원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 시작된 관세 부과는 이러한 협상카드만으로는 미국의 관세폭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다. ‘권한대행 체제’인 한국 정부는 미국과 더이상의 적극적인 협상은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다음달엔 더욱 강력한 ‘관세 폭탄’(상호관세)이 예고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입품 평균 관세율은 지난해 기준 0.79%다. 그러나 미 정부는 부가가치세와 같은 세금, 수출보조금, 각종 규제, 환율 조작 여부 등 광범위한 무역장벽을 모두 관세로 환산해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관세 부과가 시작되자 관련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큰 철강업계의 경우 그간 무관세 적용을 받던 263만t 쿼터가 사라진다. 다만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관세부담을 동일하게 지기 때문에 한국에 특히 더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 한국산 철강의 경쟁력을 인정받는다면 미국의 LNG 시장 확대와 맞물려 ‘쿼터 족쇄’를 넘어선 수출 호조세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