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국회에서 건설 현장 안전문제 증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최서은 기자
“발 받침, 안전 고리 등 최소한의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없는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매일 매순간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저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안전과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용기 냈지만 달라진 건 없었고, 저에게 돌아온 건 해고라는 칼날 뿐이었습니다”
12일 윤종오 진보당 의원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안전문제 증언대회’에 참석한 토목건축 노동자 박근태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자신이 일하던 건설 현장의 작업환경이 얼마나 위험하고 안전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회사에 수차례 문제제기 했지만 모두 묵살됐고, 이후 2개월 만에 해고됐다고 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나온 건설 노동자들은 부실한 건설현장의 안전 관리 문제를 지적하면서 현장에서 빈번하게 안전사고가 발생한다고 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지난달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산 반얀트리 호텔 건설 현장 화재 참사도 마찬가지였다.
이숙견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분양 계약기간을 맞추기 위한 무리한 공기 단축으로 서둘러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산언압전보건법 규정이 무시된 채 작업이 진행됐고, 총체적인 안전관리가 부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현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다른 업체들에 비해 너무 관리가 안됐다” “30년 넘게 일했는데 여기는 저도 항상 불안불안했다” “관리자가 한번도 현장에 나와서 보지 않았다” “이렇게 관리 안되는 현장은 처음본다” 등의 증언을 했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
노동부는 지난 11일 건설경기 악화로 지난해 재해사망 숫자가 줄었다는 통계를 발표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 현대엔지니어링 등 건설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전날 HDC현대산업개발 현장에서는 한 하청노동자가 트럭 운반함에서 자재 하역 작업 중 자재와 함께 떨어져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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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트건설 노동자 이영록씨는 “설비 공사 현장에서 현장에 익숙하지 않은 비숙련 노동자들이 준공이 임박한 시점에 자신이 하는 일이 뭐가 위험한지도 모른 채 제대로된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하고 용역 업체를 통해 대거 현장에 투입된다”며 “각종 노후 설비에 의해서 폭발 사고 등 비슷한 중대재해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레미콘을 운전하는 건설기계노동자 김봉현씨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때문에 무리하게 공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요즘 같은 건설업 불경기에는 건설사의 ‘갑질’이 심해 노동자들이 생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험요소를 안고 작업을 한다”며 “본인이 재해를 입기도 하고 타인에게 재해를 입히기도 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되풀이되는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공사에 있어서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인력과 예산이고, 그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발주자다. 그 발주자를 비롯해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책임을 명확하게 지어줌으로써 안전을 확보하자는 것이 건설안전특별법이다. 손익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 사람 대표 변호사는 “산언안전보건법과 달리 처벌 위주가 아니라 건설업의 인허가권을 갖는 기관이 예방행정 위주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현장행위자(시공자) 외 발주자, 설계자, 감리자 등 다양한 주체의 의무내용과 책임을 명확히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