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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개천’이 남긴 것

입력 2025.03.12 20:39

수정 2025.03.1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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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 한밤중, 아버지가 곤히 잠든 나와 형제들을 흔들어 깨웠다. 홍수가 났다며 얼른 옷 입고 대비하라고 하셨다. 며칠 동안 퍼부은 비에 동네 개천이 넘치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때 서울에는 298.4㎜의 비가 퍼부었다. 하루 최대 강우량으로는 1904년 기상대 창설 이후 최고 기록이었다. 한강 본류는 물론 지류까지 넘치면서 서울의 피해가 극심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딱 이런 때 적합한 속담이리라. 졸린 눈을 비비며 나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사람 많은 곳에 섞여 있게 될 수 있는데, 마냥 편한 옷만 입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끝에 밝은 청 셔츠에 청바지를 골랐다. 여기에 헐벗은 발은 아니라고 생각해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신고, 긴 머리카락은 묶을지 풀지를 고민하다 위 절반만 양 갈래로 나누어 핀을 꽂고 대기했다. 다음날 아침, 내 패션을 보신 아버지는 이런 물난리에 무슨 청바지, 무슨 양말이냐며 황당해하셨다.

그 밤 내내 부모님을 비롯한 동네 어른들은 모두 온갖 물건들을 가지고 건물 안으로 넘쳐 들어오는 물을 막으려 했다. 밤새 계속된 치열한 사투에도 결국 불어난 물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1층에 있던 부모님의 점포는 종아리 아래까지 물이 들어왔고, 다른 점포들에도 모두 그 정도씩 물이 들어왔다. 그나마 이 정도 피해는 다른 지역에 댈 바가 아니었다. 1984년 대홍수 사진을 찾아보라. 건물 2, 3층까지 침수되어 헬기나 보트로 사람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넘쳐난다.

한 뼘 남짓의 침수였어도 뒤끝은 처참했다. 버리고 치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이 들어온 자리 곳곳이 썩고 곰팡이가 피었다. 맑은 물도 홍수 때면 흙탕물이 된다는데, 그 하천은 평소에도 애들이 ‘똥개천’이라 부르던 더러운 물이었다. 동네 생활하수가 하천에 그대로 콸콸 들어가는 꼴도 심드렁히 보던 시절이다. 날씨가 꽤 쌀쌀해지기 전까지 부모님은 그 계절 내내 어디선가 계속 배어나는 썩은 내, 닦아도 닦아도 새로 피어나는 곰팡이와 씨름을 하셨다.

이해의 홍수는 부모님에게 물난리에 대한 강력한 경각심을 주었다. 동네 어른들 대부분에게 그러했다. 그 계절이 지나고, 우리 집은 물론 주변 점포들 모두 최대한 가능한 선에서 기단에 덧대어 칸막이를 만들거나 문지방을 높이는 공사를 했다. 모래를 채운 마대도 조금씩 쟁여놓기 시작했으며, 비가 많이 온다 치면 어른들은 하수구를 치우고 경계를 섰다. 얼마 후 복개되기 시작한 문제의 ‘똥개천’은 공사가 미처 끝나기 전에 내린 비에 하수가 역류하면서 또 한 번 물난리를 낸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때의 피해는 1984년만큼 심하진 않았다. 역류한 하수가 점포로 들어올 뻔했으나 북돋아놓은 기단과 부지런히 옮겨 쌓은 마대 덕에 살랑살랑 넘칠 듯 말 듯한 정도로만 위협하고 물러갔다. 나는 한밤중에 깰 필요도 없었고, 물난리에 적합한 패션을 다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30년이 넘도록 다시 물난리는 나지 않았다.

이 물난리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읽은 글 때문이다. 10·26 사건에 대해 재심을 신청한 김재규의 조카 김성신씨 인터뷰 기사였다(시사IN 912호). 김씨는 한국 민주주의의 고통스러운 발전 과정을 장마철 폭우 후에 온갖 오물이 떠오른 강물에 비유했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한번 오물을 청소하고 나면 또 한동안은 후대에 깨끗한 강을 물려줄 수 있다”며 고통스럽더라도 이 사회의 환부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고치고, 버리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가 성장해왔고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 우리 집도 1984년 홍수가 그렇게 썩은 내와 곰팡이를 남겼어도 다 말끔히 치워내고 더 단단한 기단을 쌓지 않았나. 그 더러운 ‘똥개천’도 이겨냈는데, 이 정도야, 뭘.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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