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어느 날 갑자기 여기저기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게 무슨 일인가?
블랙핑크 로제가 한국의 술자리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아파트’(APT.)가 국내외 음악 차트를 강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K팝 열풍을 타고 전 세계인들이 “아~파트 아파트” 노래를 부르고 있는 지금,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아파트가 아닌 집에 사는 사람. 한국의 주거정책은 다음 세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 아파트에 살고 싶은 사람, 아파트를 사고 싶은 사람.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모두가 아파트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지만 스스로 아파트를 떠난 사람들이 있으니, 나와 같은 공동체주택의 주민들이다. 나는 8년을 살았어도 아는 이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나의 아파트”를 견딜 수 없어 아파트를 떠났다. 그렇게 공동체주택을 지어 지금의 이웃을 만나 서로의 여백을 채우며 ‘따로 또 같이’ 살고 있다.
이웃? 아파트가 늘어날수록 현실의 우리 삶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말이다. 이웃 하면 떠오르는 ‘이웃사촌’이란 말.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이 이웃사촌이란 사촌처럼 가까운 이웃, 즉 매우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이다. ‘사촌’이란 직계가족을 제외한 가장 가까운 관계이며 수평적 관계다. 누구도 ‘이웃삼촌’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이웃사촌은 이웃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옛사람의 지혜가 담겨 있는 정겨운 우리말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에게 이웃사촌을 이야기하면 아마도 “이웃이랑 사촌을 왜 해요?”라는 질문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어울리는 이웃의 정의는 ‘잘 모르거나 알고 싶지 않은 동네 사람’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누구도 홀로 설 수 없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애나 어른이나 자립이라는 착각에 빠져 각자도생의 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누가 자립을 이야기하는가?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이거나,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찌 너를 알겠느냐”인 슬픈 현실. 자아만 비대하거나 참 자아를 모르는 사람들이 타인의 지옥에 갇혀 있다.
공동체주택에 사는 우리에게 이웃은 살아 있다. 우리에게 이웃은 ‘남인가?’ 싶을 정도로 부담 없고 느슨한 동시에 ‘또 다른 나’라고 말하고 싶은 소중한 존재다. 내가 좀 부족하고 모자라도 괜찮은 것은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도 잡아줄 수도 있는 사이. 그가 나의 이웃이다.
집은 각자의 취향과 삶 그리고 이야기를 담아내는 공간이다. 그러나 아파트는 우리의 집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곳이 되어버린 집. 이 집에서 우리는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이 어울려 사는 공간으로서 집의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우리에겐 적정 주거에 살 권리, 다양한 주거 유형을 선택할 권리, 외롭지 않을 권리, 어울려 살 권리가 필요하다.
온 국민이 아파트(값)만 바라보는 사회, 옳지 않아!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