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알루미늄 제품 생산 기업
이미 ‘관세 부담’ 계약 많아
추가 관세 떠안으면 큰 타격
중국산 원재료 가공업체는
관세 200% 가능성에 ‘캄캄’
“트럼프 관세요? 작은 기업들에는 생사가 걸려 있는데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경남에서 알루미늄 소재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 관계자 A씨는 12일 시작된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해 묻자 한숨을 쉬었다. 대미 수출 규모가 연간 약 1000억원인 이 업체의 계약 일부는 ‘도착 가격’으로 맺어져 있다. 이 경우 물류·운송비와 관세는 A씨 업체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 부담(25%·자동차 부품의 경우 알루미늄 함량에 따라 관세율 판정)이 뛰어버린 것이다. A씨는 “고객사가 관세를 내는 종류의 계약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고객사가 우리에게 관세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면서 “판매가당 마진이 얼마 되지 않는데, 추가 관세를 다 부담하게 되면 우리는 죽는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발 관세 폭격’에 중소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중간재의 경우 관세는 수입 기업이 물지만, 상대가 관세를 떠밀거나 A씨 기업처럼 아예 관세 부담을 전제로 계약한 사례도 적지 않아서다.
그나마 수입사와의 협상이 ‘비빌 언덕’이지만, 당장 손해를 보지 않더라도 향후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A씨는 “고객사가 추가 관세만큼을 부담해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러면 그쪽이 다른 공급처를 찾을 수도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관세 책임을 다 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트럼프가 물러서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설치된 ‘관세 대응 119’ 상담센터에는 상담 요청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관세는 미국 측 바이어(수입자)가 내는 게 맞는데 ‘수출자(한국 기업)가 맡았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은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경우에는 양사 ‘힘의 관계’를 고려해 단가를 낮춰주거나, 관세 일부를 부담해주거나 하는 식의 협상을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이번 관세 대상엔 철강·알루미늄뿐 아니라 그 ‘파생 상품’까지 포함돼 중소업체에 미칠 충격이 더 크다.
철제선반을 제작해 판매하는 업체의 대표 B씨는 “우리는 선반류라서 1기 때는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부과 대상이다. (관세 대상) 목록을 보고 나서 처음엔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당황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이 미국 관세사를 만나고 왔는데 우리 제품도 해당하는 게 확실하다고 하더라”고 했다. B씨는 “정부에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관세 대응 수출바우처’를 지원한다기에 알아보고 있다”며 “가격을 올리자니 지난해부터 줄어든 수출량이 고민스러워 일단 떠안는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따라 다음달부터 기존의 수출바우처 사업을 ‘관세 대응’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다. 수출바우처는 중소기업이 30%, 정부가 70%를 부담해 최대 1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로, 여기에 미국 관세사 컨설팅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중국산 철강·알루미늄을 수입해 가공한 뒤 미국에 수출하는 중소업체들 중에선 ‘얼마만큼의 관세를 내야 하느냐’부터 궁금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산’이면 25%지만 ‘중국산’이면 기존 관세에 반덤핑 관세, 트럼프 2기의 추가 관세 등을 합해 200%까지 매겨질 수 있다.
코트라 측은 “단순히 구부리거나 절단하는 정도의 가공으로는 한국산으로의 원산지 변경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미국 관세청을 통해 미리 원산지 판정을 받아두기를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