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국가를 지탱하는 권력의 근본적 힘은 ‘책임’에서 나온다. 권력의 무게에 비례해 운명을 걸어야 할 결정이 많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에서의 치명적 두 죄악 중 하나로 “책임성의 결여”를 꼽았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14일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명태균 특검법을 거부할 거라고 한다. 법안 공포시한(15일)까지 뭉개다 밀린 숙제 털 듯하는 것이다. 3개월도 안 돼 8번째 거부권인데, 민주화 이후 모든 대통령보다 빠른 속도다. 여소야대 국회의 입법권을 거부권으로 무력화하던 대통령 윤석열(25회 행사)의 권한만 아니라 악정도 승계한 듯하다. 오죽하면 ‘거부권 권한대행’이란 말이 나올까.
“국민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전력을 다하겠다”던 최 권한대행의 초심은 딱 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임명까지였다. 다수 국민이 요구하는 내란특검법은 ‘정치권 합의’를 촉구하며 두 번 거부했다. 마은혁 헌재재판관 임명도 ‘여야 미합의’를 이유로 거부하더니 헌재의 권한침해 결정에 “존중한다”고 하고선 보름째 묵묵부답이다. 내란 세력과 국민의힘 눈치를 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최 권한대행 행보는 미국의 승계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과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트루먼은 부통령이 된 지 82일 만에 대통령직을 승계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이끌고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을 조직해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했다. 서방세계를 지켜낸 거인이란 뜻으로 ‘리틀 빅 맨’으로 불린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난 당신을 얕보았다. 루스벨트 대신 그대가 대통령이 된 게 싫었다. 그러나 당신은 그 누구보다 서구문명을 잘 지켜냈다”고 했다. 반면 리처드 닉슨의 사임으로 대통령이 된 포드는 30일 만에 그를 사면해 국민을 배반했다. 국회와의 관계도 최악이어서 2년 반 재임 동안 66개 법안을 거부했는데 윤석열과 닮은꼴이지 않은가. 결국 그는 재선에 실패하고 최단명 대통령으로 남았다.
무소신의 권한대행을 역사가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트루먼은 물 건너간 듯하고, 그나마 ‘성실했다’는 포드 정도의 평가는 들을 수 있을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권한대행이 봐야 할 건 오직 국가와 국민이었는데, 눈치만 살폈으니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