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특별연장근로 발표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와글’
“지금도 초과근로 중” “인적 투자가 순리인데 과로만 조장”
“주 52시간 제도를 시행한 이후 연구·개발(R&D) 성과가 줄어든 게 아닙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을 포기하고 인건비 위주의 재무 경영을 한 이후부터 경쟁력이 약화됐습니다.”
정부가 반도체 R&D 노동자들이 6개월간 주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 제도 특례를 발표한 다음날인 13일 삼성전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SK하이닉스에서도 “삼성의 경영 실패를 왜 노동시간 제도를 바꾸면서 해결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불만이 나왔다.
정부는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이 국회에서 난항을 겪자 특례를 신설해 노동시간 상한을 풀었다. 고용노동부는 14일부터 이런 내용의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지침’을 시행한다.
삼성전자 R&D 직군 노동자 A씨는 12일 밤 11시 퇴근해 다음날 오전 6시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하루 수면시간은 4~5시간이다. 그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지금도 삼성전자는 초과근로 천국”이라면서 “한 달에 120시간 이상을 초과근로한 동료도 있다”고 했다. 그는 “한 동료가 ‘저 죽을 것 같아요’라고 말해도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했다.
2023년부터 지난해 10월 말까지 노동부가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한 건수는 총 23건이었다. 기업별로 보면 삼성전자가 22건, LX세미콘이 1건이었다. A씨가 보기에도 현장에서 ‘몰아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있다. 고객이 설계도 변경을 요청하거나 원하는 일정이 있는 경우 개발자들은 늘 시간에 쫓기게 된다. 그럴 때 회사는 ‘일정을 단축하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더 뽑아야 해결되는 문제지만 회사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부 직원들에게 특별연장근로에 관한 설명회를 진행하고 ‘동의서’를 받았다. A씨는 “회사는 이미 정부에서 특별연장근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의심이 든다”면서 “R&D는 인적 투자를 하는 게 순리인데 경영진의 실패를 노동자들의 과로로 막아보겠다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3개월간 주 64시간 일하고 또 3개월간 주 60시간 일한 뒤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김영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K하이닉스기술사무직지회 부지회장은 “오전 8시30분 출근해 밤 11시30분 퇴근하는 삶을 1년간 살라는 뜻”이라며 “어떻게 사람이 1년간 그렇게 사느냐”고 반문했다.
김 부지회장은 정부가 R&D와 관련된 생산 인력이 ‘불가피’할 경우 특례에 포함된다고 발표한 것도 우려했다. 종합반도체 산업 업무는 서로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우려도 있다. 그는 “R&D 쪽에서 ‘크런치 모드’로 일하면 공정을 검증하는 쪽에도 달라붙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장비 관련 외부 업체들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장시간 노동에 매몰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다. 그는 SK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제도 변화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회사 실적이 좋아서 삼성과 다르죠. 회사가 특별연장근로를 요청하면 노조 대표자들 동의를 얻어야 할 텐데 아마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