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독자위원회 3월 정기회의

지난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4기 독자위원회가 3월 정기회의를 하고 있다.
4기 독자위원회는 이날부터 1년간 경향신문의 온·오프라인 콘텐츠가 사회정의와 인권보호, 권력감시 등 언론의 사명에 맞게 제작됐는지를 점검하고 올바른 보도 방향에 대한 제언을 할 예정이다. 정효진 기자 hoho@kyunghyang.com
경향신문 독자위원회가 지난 5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2025년 3월 정기회의를 열었다. 정연우 위원장(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주재로 열린 회의에 김소리(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 정은숙(도서출판 마음산책 대표), 최정묵(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소장), 오용석(녹색전환연구소 기후시민팀 팀장), 김예희(다인세무회계 회계사), 김용(한국교원대 종합교육연구원장), 김소형(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경향신문에서는 박병률 탐사기획에디터 겸 경제에디터가 내부위원으로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직업계고 취업장려금에서 배제된 이주학생들>, 정지아의 할매열전 등 이주민, 고령자, 직업계고, 특수고용직 종사자와 같은 한국 사회가 관심을 잘 기울이지 않는 대상에 관한 기사와 칼럼에 대해 위원들의 격려와 추가 취재 당부가 있었다. 또 <다시 검건희…이 모두가 우연인가>, 3·1절 집회 보도, 극우 단톡방 잠입 보도 등 12·3 비상계엄에 대한 경향신문의 뚜렷한 콘텐츠 제작 방향을 두고도 시의적절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극우 분석, 기후위기 등에 대해서는 후속 보도, 혹은 더 입체적인 보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은숙 = 경향신문이 <대통령실, ‘비동의강간죄 도입 검토’ 여가부 직원 감찰>(2월19일자 1면)을 단독 보도했다. 김종미 전 여성가족부 국장을 단독 인터뷰하며 밝혀진 것인데 여가부에서 2023년 도입을 하려 했던 비동의강간죄는 절차를 다 밟았지만 여당과 대통령실에서 반대해 폐지됐다. 정책 수립 과정에서 문제가 없던 사안이지만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추진 과정을 감사하고 심지어 조치를 취했다.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반성평등주의였는가, 얼마나 절차를 무시한 정부였는지 증언을 듣는 기분이어서, 저로서는 굉장히 경악했던 단독 보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건희 여사는 12·3 내란을 계엄 선포 전까지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탄핵심판 8차 변론에서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이 전날 김 여사에게 문자를 받았단 걸 증언했고,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가정사 때문에 계엄 선포를 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어떤 연관성이 있음이 드러났다. 이처럼 공적으로 밝혀진 증언을 토대로 김민아 칼럼니스트는 <다시 김건희…이 모두가 우연인가>(2월15일)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잘 엮었다. 경향의 정론직필을 응원한다.
■김소리 = <헝클어진 수사권> 기획기사를 잘 봤다. 제가 실무를 하다 보니까 수사권 조정 이후 검경의 핑퐁과 고발인 이의신청권이 인정되지 않음으로 인한 폐해를 겪고 있었는데, 적기에 좋은 기사 써줬다 생각한다. 내란 수사가 시작됐을 때 대체 수사 누가 하는 게 맞냐는 논란이 많았다. 저도 누구나 수사하겠다고 하면 수사하는, 이게 어떻게 된 제도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서민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잘 지적했다. 고발 사건은 대체로 장애인, 아동, 동물 등 스스로 피해 구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약자가 관련이 많다. 고발인 이의신청권이 정치적 이해 때문에 폐지되면서 경찰이 불송치하면 뾰족한 수가 없다. 고발을 주저하는 상황이 됐는데 이런 문제를 잘 짚어줬다. 검경 핑퐁으로 경제범죄 처리가 더 길어진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공수처 한계도 잘 짚어준 것 같다. 다만 변협이나 변호사단체 입장도 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검찰개혁 단일안 모색 토론회를 거쳐 안을 마련한다는데 계속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김예희 =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쓴 <재산세 과표의 일관성 없는 ‘부분 평가’, 조세 부담 형평성 깬다>(3월5일자 19면)는 업계에 있는 나로서도 내용 자체가 쉽진 않았다. 재산세의 과표가 일관성 없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목표금액을 설정하고 거기에 따라서 과세를 하지 않고 공시지가 몇%로 과세하다 보니까 집값 많이 오르는 지역은 세수가 넘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부족한 지역 불평등이 생긴다 등의 내용인데, 전문적이라 일반인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재산세를 지엽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등 크게 보며 다룬 것은 좋았다고 생각한다. 또 지방세를 부과하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도 새로운 시각을 갖는 기회가 됐다.
■최정묵 = 상속세와 관련된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지금까지는 각 정당의 반응 등을 전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인 것 같다. 상속세 관련해 주로 어떤 정책 계층을 위한 변화이고, 실제 내용이 뭔지를 설명해주는 기획기사가 없는 게 아쉬웠다. 정치부발 기사겠지만 경제부와 협업해서 독자들이 의사결정하는 데 관점을 갖도록 도와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용 = 2월 충격적인 교육 분야의 사건은 교사가 초등생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의미 있게 본 기사는 <충격적 사건에 쏟아진 속단…성급한 보도로 부추긴 차별>(2월11일)이었다. 교사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우울증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다고 속단을 했고, 이어 그가 돌봄교사인가 정규교사인가를 두고 교직 내부에서 굉장히 논란이 많았다. 요즘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교직사회 안에서의 차별이다. 이를 경향신문이 잘 포착한 것 같다.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면 정부는 국민장학금 2유형을 안 준다. 등록금 인상 결과 학생들의 부담은 커졌고, 대학은 큰 손해 볼 게 없다. <등록금 인상에 국가장학금 까였는데…뒷짐 진 대학들>(2월21일자 10면)은 지난해 제2유형 장학금 지급액과 수혜 인원을 표로 보여줘서 ‘아, 이게 상당히 광범위한 문제구나’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1950년대 이후 한국 신문들이 다룬 교육 기사를 찾아봤는데, 서울 중심 기사가 많다. 지방 대학과 학생은 좀 다른 문제를 겪고 있을 텐데, 그 부분에 충분히 관심을 할애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계고 취업장려금에서 배제된 이주학생들>(2월18일)은 사람들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직업계고를 주목한 것이 좋았다. 제조업에 일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잘 배워서 국내 제조업에 종사하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런 부분에 관심을 더 기울여달라. <올해 서울대 정시 합격생 21%는 ‘삼수 이상’ 10년 새 최다>(2월7일) 기사가 있었다. 경향신문뿐 아니라 언론의 대학 입시 관련 기사 중 상당량은 소스가 특정 학원이다. 이런 기사를 보면 독자들이 ‘재수를 해야 될 수도 있겠구나’ ‘학원 가야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지 않을까. 이 점은 좀 예민하게 봤으면 좋겠다. 경향신문에서 다루지 않은 게 있다. 지난해 강원 속초에서 현장체험 중 발생한 학생 사망사고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는데, 인솔교사들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게 굉장히 심각한 사안이다. 현장체험 갔다가 사고 나면 교사들 책임이라는 메시지를 1심 판결이 준 거다. 이런 건은 좀 관심을 갖고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김소형 = 정지아의 할매열전과 이희경의 한뼘 양생이 신선했다. 2월28일자 25면 <이토록 젊은 할매>는 가시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구성원 중 하나인 여성 노인 인구에 대해 이분들 삶의 궤적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내면서 노고를 치하하고, 그 가치의 중요성을 부여했다. 같은 면 <올 어바웃 기저귀>는 노인에게 필수품인 기저귀가 더 이상 상실과 수치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기 돌봄을 맡길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는 점, 그리고 기저귀를 둘러싼 문제들도 함께 다뤄줬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될까. 기획기사나 연재의 형태로, 다각적 측면에서 좀 더 심층적으로 다뤄주면 좋겠다. 또 하나 좋았던 게 2월24일 뉴스레터인 인스피아다. 요즘 학생들에게 “너넨 요즘 어떻게 뉴스 접하니”라고 물어보면 기존 언론사를 들진 않는다. 자기들이 소비하는 매체들이 따로 있고 대개 소비 방식은 뉴스레터다. 2월24일 <집중하려는 자, 보람을 찾으라>는 책 <집중력 설계자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소개했다. 스마트폰 디지털 시대에는 여러 가지로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이 많아 집중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이럴 때 어떻게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는지를 책 소개를 통해서 재밌게 엮어놨다. 경향에는 점선면이라는 뉴스레터도 있다. 점선면은 친절하게 각 이슈에 대해 기사를 잘 연결해주고 요약해주지만, 메일을 열면 한눈에 ‘이거 재미있겠네, 클릭해야겠네’ 할 정도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끝까지 읽어볼 수 있게 만드는 1%가 안 보여 아쉽다.
■오용석 = 기후 키워드로 주로 살펴봤다. <남태령을 넘어> 시리즈의 2월3일 기사 <삼면이 댐인 동네, 송전선 관통할 마을…오로지 ‘반도체’를 위하여>는 균형발전, 지역소멸 그리고 중앙과 지역 간 격차 등을 농촌 문제 중심으로 잘 풀어냈다. <남태령을 넘어> 시리즈는 농촌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여러 함의, 짚어볼 수 있는 우리 사회 주요 이슈들, 기후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굉장히 좋은 시리즈였다는 생각이 든다. 2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중요한 이슈로 에너지 3법, 즉 전력망 확충, 고준위방폐장법, 해상풍력법이 통과됐다. 단편적 보도만 됐는데 이런 것들을 다각적으로 다루면 어땠을까 생각 들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후는 과학·환경 분야에 기후·날씨로 분류되어 있고, 기후위기보다 날씨 보도가 훨씬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날씨가 더워지고, 비가 많이 오는 문제가 아니다. 산업, 통상, 일자리뿐만 아니라 보건복지와 안전, 주거와 이동 등 시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독자들이 이와 같은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영역에서 기후위기를 다루는 입체적인 기사를 더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연우 = 3월3일자 3면 3·1절 탄핵 찬반 집회 기사의 경우 타 매체들은 기계적 중립이라며 찬반을 똑같이 싣거나 참가한 수를 부각해 보도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은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는 사진을 크게 배치하고 의미를 부여해 비중 있게 다룬 반면 반대 집회는 막말 난무한 집회라고 지적했다. 탄핵에 대한 경향신문의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준 기사였다. 지난해 5월 노동절 전후해서 경향이 <노동법 밖의 노동자> 시리즈를 연재했다.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 사망의 경우도 방송사 안 프리랜서 차별과 노동권 침해가 집약된 현장의 사례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 <조직 내 뚜렷한 계급 차이·여성화된 노동의 특수성이 키운 ‘고질병’>(2월13일자 15면), 기자칼럼 <사각지대는 위계를 가린다>(3월4일자 26면)에서 이 문제를 생생하게 짚었다. 지난해 보도 이후 그사이 어떻게 달라졌나, 우리가 제기한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등을 후속 기사로 다뤄줬으면 좋겠다. 극우 카톡방을 잠입취재한 <그들의 믿음에 검증은 없었다>(2월19일자 1면)를 재미있게 봤다. 이 기사에서 극우들의 의식세계는 엿볼 수 있었지만, 한발 더 나아갔다면 어땠을까 싶다. 이를테면 카톡방에 참여한 그들은 누구인가, 이런 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는가 등 심층 후속취재가 있으면 좋겠다. 주간경향이 특집으로 다룬 <극우 대해부> 시리즈와 같은 것들을 신문에서도 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