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어둠과 악에 맞서 빛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들려주는 영화 <화이트 버드>.

어둠과 악에 맞서 빛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들려주는 영화 <화이트 버드>.

혐오의 시대다. 여성을, 장애인을, 중국인을, 또 누군가를 타당한 이유 없이, 나의 이익이나 권리를 침해했다면서 일방적으로 조롱하고, 배척하고, 탄압한다. 초유의 일이 아니고 낯설지도 않다. 희생양을 만들어 진짜 악에서 시선을 돌리려는 음모는 인류사에 항상 존재했다.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가 있었고, 제국주의 일본의 조센징 혐오도 있었다.

12일 개봉한 <화이트 버드>는 유대인을 혐오하고 학살한 역사를 그린 영화다. 2017년 개봉해 많은 이들이 감동했던 <원더>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오기는 뒤늦게 학교에 편입한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던 오기는 결국 친구들과 함께 웃음을 되찾는다. 괴롭힘을 주도했던 줄리안은 전학을 간다. 좋은 영화다.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고 괴롭히는 행동이 얼마나 그릇된 것임을 잘 보여주었다.

<원더>는 해피엔딩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일들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꽤 많다. 약자, 소수자는 시선에서, 미디어에서, 역사에서 지워지기 일쑤다. <원더>의 원작 소설 <아름다운 아이>에서 오기의 이야기를 다룬 작가 R J 팔라시오는, 그래픽 노블 <화이트 버드>에서 가해자인 줄리안의 시점을 택했다. 왜 가해자의 이야기를? 낯선 학교로 간 줄리안은 과연 변화했을까? 엄마 친구의 아들이 말을 걸지만 부담스럽다. 줄리안은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고, 무엇에도 관여하기 싫다고 할머니 사라에게 말한다. 오로지 나의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화가인 사라는 침울한 줄리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942년 프랑스에서 겪은 일들. 나치 독일의 군대가 프랑스를 점령하여 북부는 군정 치하였고, 남부에는 괴뢰 비시 정부가 들어섰다. 유대인 출입 금지를 붙인 가게가 늘어나고, 친했던 친구들이 갑자기 유대인이라며 비난한다. 사라의 부모도 도피 준비를 시작하지만, 나치가 더 빨랐다. 유대인 학생들을 잡기 위해 독일군이 학교에 들이닥친다.

겨우 도망쳤지만, 사라는 갈 곳이 없다. 절망한 사라에게 손을 건넨 이는 동급생인 줄리안. 병으로 한쪽 다리에 장애가 있어 목발을 짚은 그를, 모두 놀렸다. 사라는 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줄리안은 사라를 자신의 집 헛간으로 데려간다. 줄리안의 부모도 사라를 극진하게 돌본다. 혹시나 들키면 치러야 할 희생이 두렵지 않냐는 사라의 말에, 줄리안의 엄마는 답한다. 어두운 시기에는 모두가 힘들어하지만, 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의 인간성을 깨워준다고.

이전에 사라는 줄리안에게 특별히 말을 걸거나 다정히 대하지 않았다. 피하거나 조롱하지도 않았다. 보통의 사람, 우리다. 그러나 줄리안은 사라를 돕는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유대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차별과 박해를 받고 죽어간다. 장애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조롱과 비난을 들어야 했던 줄리안은, 나의 고통을 약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다정함과 용기로 승화시켰다. “다정함에는 용기가 필요해.”

용기를 내고, 다정하게 손을 내밀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질 수 있다. 그래픽 노블 <화이트 버드>에는 ‘악이란 선한 이들이 그것을 끝내겠다고 결심할 때만 멈춰지는 거니까요’라는 말이 나온다. 사라가 호감을 주었던 동급생 빈센트는 강자의 편에 선다. 나치 청년단에 들어가 프랑스인 레지스탕스를 고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부역자가 된다. 약자를 혐오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유치한 자존감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사라와 줄리안은 헛간에서 낡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며, 뉴욕을 달리는 상상을 하거나 채플린의 연기를 따라 한다. 헛간에 갇힌 사라와 한 번도 마을 밖을 보지 못한 줄리안은 상상을 통해 세계의 모든 것을 꿈꾸고, 자신의 능력을 무한대로 확장한다. 약자를 혐오하는 대신,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꿈꾸고 행동한다.

우리는 악, 혐오와 어떻게 싸워야 할까. 한때 ‘미러링’이란 말이 유행했다. 혐오하는 언어와 행동을 그대로 돌려주어 가해자가 자신이 한 짓이 얼마나 부끄럽고 사악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는 의미였다. 서로 조롱과 혐오의 언어와 행동을 무수하게 쏟아낸 후, 세상은 혐오와 폭력으로 가득해졌다.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고 싸우면, 모든 것이 파괴된다. 저명한 화가가 된 사라는 회고전에서 말한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빛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절실한 진리의 말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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