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동안 지인의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꽤 오래전 지어진 탓에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는 공간이 따로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만 주차장 한쪽으로 이동식 수거장을 설치해 입주민들의 쓰레기를 거둬 처리한다고 했다. 하필이면 지난 연휴에 재활용 쓰레기 수거일이 겹쳐 2주치 쓰레기를 집 안에 쌓아두고 지내야 했다고 하는데,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업체도 휴일은 챙겨야 할 테니 관리사무소나 입주민들 입장도 참 난처하겠다 싶었다. 지인은 그렇게 쓰레기 버리는 날만 벼르며 연휴를 보냈다.
그리고 수거 당일 그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차장으로 나섰을 때, 그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과 달리 대부분 입주민은 공지된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요일만 마지못해 지키는 척 쓰레기를 주차장 공간에 들이붓듯 꺼내두었다고 한다. 지인은 분개하였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비를 서는 노인의 정리 업무를 돕고 캔커피 하나를 사주는 것뿐이었다.
나도 1984년에 준공했다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월세살이를 한 지 10년을 훌쩍 넘어섰다. 다행히 상시 분리배출을 할 수 있는 공간은 있어 지인의 집보다 편하지만 단지에 사람이 늘어나는 것인지, 그들의 소비가 느는 것인지 재활용 쓰레기장 포대는 반나절이 멀다 하고 넘쳐난다.
생활방식이 바뀐 탓이다. 사는 사람의 수는 알 수 없지만, 드나드는 사람은 확실히 늘었다. 탑차를 타고 오기도 하고 오토바이로 드나드는 경우는 더욱더 많다. 사람들은 이제 휴대전화로 장을 봐 새벽에 상자로 받고, 며칠에 한 번은 배달을 시켜 먹는다. 과거 중국집과 통닭 정도로 한정되어 있던 것과 달리 거의 모든 메뉴를 휴대전화로 주문해 40분 안짝으로 받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수거장 포대는 고춧가루 양념의 뻘건 자국이 빠지지 않은 허연 플라스틱 용기와 그에 딸려 오는 불투명한 뚜껑들로 한가득이다. 그 옆에는 새벽에 배송된 종이 상자와 안에 딸려 온 얼음팩 비닐이 쌓인다.
몇년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던 음식 칼럼니스트가 생각났다. 그는 국내 식문화와 외식업계의 이런저런 이슈에 문제를 제기하곤 했는데, 한번은 나와 차를 마시다 급식용 식판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학생과 군인, 노동자가 밥을 제대로 된 그릇에 받지 못하고 식판에 올려 먹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했다. 그는 식판이 밥을 담는 용기가 아니라 밥을 담은 그릇들을 올릴 쟁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고, 사람의 존엄은 음식을 먹기 전 그것을 담는 행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나도 백반집의 정성은 반찬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멜라민 그릇과 사기그릇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꽤 그럴듯하게 들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식판과 멜라민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제 제대로 닦을 줄도 모르고 또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일회용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는다. 그 칼럼니스트의 철학을 빌려 바라본다면,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스스로 존엄을 포기하고 일회용 쓰레기만 잔뜩 만들어내는 일상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모른다.

박준우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