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한은 제공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4일 현재 합계출산율이 유지될 경우 한국 경제는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으로 접어들 수 있다며 수도권 인구 집중, 입시경쟁 과열 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기조연설에서 “출산율 0.75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을 시사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5인 데 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4다. 이 총재는 “이 두 출산율 수치의 차이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를 유지할 수 있느냐, 아니면 마이너스 성장에 빠지느냐를 결정하게 된다”며 “출산율 0.75가 지속된다면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출산율이 1.4 수준이라면 2050년대에도 플러스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출산율이 낮을수록 국가재정이 악화된다고 짚었다. 그는 “출산율이 0.75 수준을 유지할 경우 50년 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8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면 출산율이 1.4 수준이라면 국가채무 비율은 163%로, 상승폭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출산율이 낮아지고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포퓰리즘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성장이 정체되면 분배 여건이 악화되고, 세대간·계층 간 갈등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기영합적인 복지정책이나 현금지원과 같은 재정정책을 추진하려는 유혹이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초저출산율 0.75, 과도한 수도권 인구 집중, 입시경쟁 과열, 이 세 가지 문제는 별개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상 서로 깊이 연결돼 있다”며 “이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인구소멸, 항구적 마이너스 성장, 사회갈등의 폭발, 그리고 청년들의 기회 및 자신감 상실 등 우리 사회가 용인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작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 해결방안으로 거점도시 육성, 지역별 비례선발제 등을 제안했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대학에 신입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되 최종 선발 결과는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에 비례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 총재는 저출생뿐 아니라 기후변화 대응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의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를 국제기준에 맞춰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친환경의 정의를 더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탄소 감축을 위한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개선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기준 t당 6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우리나라 탄소배출권 가격을 보다 현실적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탄소배출권 거래제(K-ETS)도 개선해 현재 90%에 이르는 무상 할당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배출권 총량도 점진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