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대리운전노조 조합원들이 1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플랫폼 기업 ‘청방’ 옹호하는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사측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항의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된 대리운전 기사 사건에 대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서 부당노동행위라는 판정이 나왔다. 노조 측은 환영한다며 사측에 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리운전업체 ‘청방’ 소속 대리운전 기사로 일해온 한철희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조직국장은 지난 1월 회사로부터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회사 측은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아 계약 유지가 더는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노조 측은 2023년 4월 입사한 한씨가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사측의 부당한 조치에 대한 항의 글을 ‘회사 소통밴드’에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한 국장과 대리운전노조는 지난해 10월 사측에 ‘기사 관리비와 경조사비 등 수입·지출·잔고 내역 공개, 여성 대리기사 배차 차별 확인 등을 요청한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회사는 노조 측이 요구한 단체교섭 요구서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이후 회사가 관리비를 인상하자 한 국장은 그 근거를 알려달라며 항의하는 글을 올렸고, 열흘 뒤 사측은 한 국장의 위탁계약을 해지한다고 통지했다. 이에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한씨에 대한 부당해고와 교섭 거부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지노위는 13일 사측의 해고와 단체교섭 거부 행위를 모두 부당노동행위라 판결했다. 사실상 대리운전 기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동자이며,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계약해지 등 불이익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인정한 셈이다.
대리운전노조는 지노위 판정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고 “회사는 지노위 결정에 따라 해고를 철회하고 단체교섭 이행에 성실히 나서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오늘 판결이 그동안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의하고 불공정한 관행을 강요해 온 대리운전 업체들에 경종을 울릴 것”이라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숨죽여왔던 대리기사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용기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대리운전 기사도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첫 판결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대리운전 기사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지노위 판결 후에도 회사 측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사측이 이번 판결을 받아들여 한 국장에 대한 해고를 철회할지, 교섭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한 국장은 “회사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다”며 “지노위에서도 회사는 ‘왜 교섭을 해야 하나’, ‘회사와 방향이 안 맞는다’ 등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업체 ‘청방’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관련한 입장을 묻자 “현재 담당자가 부재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