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구폐요(狗吠堯)란 고사가 있다. 큰 도둑인 도척의 밥을 먹는 개는 아무리 제 주인이 악당이라도 주인이 지시하면 요 임금과 같은 성인군자에게도 짖어댄다는 뜻이다. 이 고사가 새삼스럽지 않은 현실이 부끄럽고 참담하다.
선진국의 문턱에 선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기도했다. 윤석열의 12·3 쿠데타는 헌정질서를 크게 해쳤다. 그런데 반란 수괴를 옹호하고 민주시민과 사법기관을 적대하는 극우세력이 발호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하여, 내란 우두머리와 중요임무종사자들을 단죄하는 것은 법치주의 민주공화국 시민과 사법기관의 권리이고 의무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책무가 시급하다. 법리는 간단명료하다. 12·3 계엄의 헌법·형법상 불법성을 인정하면 된다. 2024년 12월 초 한국사회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였는가, 비상계엄을 선포할 정도의 위기에 있었던가. 계엄령이 국무회의에 상정되지도 않았고 설혹 타당성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국회 침탈은 계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 풀려난 전후 내란 우두머리의 언행에서 헌법수호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등 파면 결정의 사유는 차고도 넘친다.
공교롭게도 올해 을사늑약 2주갑을 맞으면서 120년 전 국치의 사록을 돌이키게 되는 것은 지난 세월 우리 사법의 흑역사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을 겪으면서 우리 사법은 국민보다 권력자의 편이 된 적이 더 많았다. 과거나 지금이나 법관 중에는 정의롭고 양심적인 분들도 많았다. 민주주의 근간인 사법부의 독립은 오래전 이루어졌는데, 공정성이 부족해 불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에 서명한 5적이 모두 판사 출신이었다. 학부대신 이완용은 평남과 전북재판소 판사, 외부대신 박제순과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평리원 재판장 서리, 군부대신 이근택과 내부대신 이지용은 평리원 재판장을 지냈다. 평리원은 고종이 의금부를 고등재판소로 개칭했다가 바뀐 사법기관이다.
우연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공통점이 있었을까. 어째서 애국심과 공정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조선왕조 말기의 판사와 재판장 출신들이 하나같이 일제에 주권을 넘기는 을사늑약에 도장을 찍은 매국 행위를 자행했을까.
을사오적은 병탄 뒤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고 후예와 추종자들은 일제강점기 기득권층이 됐다. 해방 후 사법부 수장을 비롯한 판검사·변호사 중에는 친일 부역자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청산과 반성의 과정 없이 오롯이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졌다.
이승만의 조봉암 사법살인, 박정희의 인혁당 관련자 처형,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날조사건 등은 모두 판사들이 하수인 역할을 했다. 우리 사법부는 독재정권에서는 칼잡이가 되고 부패정권과는 유착했다. 그나마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 이정미 소장직무대행을 비롯한 8명의 재판관이 국정농단의 주범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함으로써 사법의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시 국가진운이 걸려 있는 막중한 사안에 헌재가 오로지 법률과 양식에 따른 대승적인 심판을 하기를 기대한다. 사법의 흑역사를 말끔히 씻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의 행동이 후대에 귀감이 되고 역사의 거울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은 민주공화제를 복원하고 국민을 역사허무주의에서 구하게 될 것이다.

김삼웅 평전작가 전 독립기념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