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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엘리트의 재생산 구조

서울대·육사·충암고·주거지까지

엘리트들의 동질화는 국민엔 재앙

배경·경험·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사법기구 구성해야 ‘정의’가 회복

공정, 상식, 카르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탄핵소추로 직무를 중단할 때까지 가장 많이 썼던 말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됐지만 스스로 그것을 부정하고 군대를 동원한 그는 자신의 이 말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판사 지귀연, 검찰총장 심우정은 그의 구치소 탈출을 도와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지만 한국의 사법체계가 얼마나 불공정하며 비상식적인지, 그들의 카르텔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도 보여주었다.

윤석열과 조력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2016년 경향신문 보도로 알려진 교육부 정책기획관 나향욱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이 떠올랐다. 법의 틈새를 악용한 속임수와 그것을 눈감아주고 항의를 뭉개는 법원·검찰 최고위 공직자들의 의식도 같았으리라는 생각에서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돌려달라고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는 언어적 의미도 가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능력 있는 법률가이고 최고의 이력을 가진 성공한 사람들이야. 그냥 우리 말을 들어.’ 지난 7일 윤석열의 구속 취소 판결이 나온 후 검찰총장과 대검의 태도를 해석하면 이렇게 들린다. 안하무인(眼下無人), 눈 아래 사람이 없다는 것. 사람이 아니면 무엇인가, 그들에게 법질서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이들은?

법조 카르텔. 지난 주말 광장을 메운 시민들은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경쟁을 피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한 집단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지키기 위해 나섰다. 학연과 지연, 혈연 등으로 얽힌 인맥, 연줄망, 그리고 사회자본이라고도 불리는 권력 독점 집단의 폐해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그대로다. 평범한 외부자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이 집단의 내부자로서 누리는 특권 덕분에 문을 두드리며 길게 늘어선 줄이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상이 있다. 사법부와 행정부, 입법부 내 고위직 관료들의 출신 배경이 더욱 동질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를 움직이는 최고위 공직자들의 출신 학교나 출신 지역이 갖는 유사성은 오래되었지만, 윤석열 정부와 친위쿠데타에 관련된 인물들의 동질성은 매우 놀라울 정도다. 서울대와 육사, 충암고를 거친 이들이 동문이라는 연줄망으로 동조 세력이 되었고, 서울법대와 특정 대형 로펌의 경력을 가진 이들이 법률 조력자로 활동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서울의 강남 등 특정 지역에서 성장해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검찰이나 법원에 근무하며 주거지까지 이웃한 사람들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전형적인데, 현재 사는 곳도 아크로비스타라니 이보다 더 끈끈한 인연이 있을까 싶다.

국가 엘리트 출신 배경의 동질화는 국민들에게는 재앙에 가깝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동질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동질적인 경력을 쌓으며 이웃으로 살고 동질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해온 그들이 다른 계층, 다른 성별, 다른 지역, 다른 학교, 다른 직업, 다른 동네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의식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법조문을 달달 외우고 경쟁률 높은 시험을 통과하고 서울법대에 새겨져 있다는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운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다고 해도, 경쟁에서 탈락하고 매일 생계를 걱정하고 출퇴근길 만원 버스 속에서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단함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사회가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느끼는 사람들, 차별과 혐오·폭력 앞에 노출된 사람들, 정치적·경제적 양극화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검찰청을 기소청으로 바꾸고 로스쿨 교육을 민주화하고 시험과목에 민주주의 시민의식을 포함한다고 해도 엘리트 동질화의 폐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적(私的) 삶과 공적(公的) 이력이 완전히 겹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타인에 대한, 다른 인간 집단에 대한 이해와 상상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의 아파트값이 계층 간 접근성을 막는 폐쇄된 사회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동문(同門)으로 뭉치고 같은 직장,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기구를 지배할 때, ‘민중’이 무엇으로 보일지는 생각조차 하기 싫다. 기소청이든 수사청이든 엘리트 충원에서는 출신 배경의 다양성을 첫 번째 요건으로 삼아야 한다. 서로 아주 다른 배경과 경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결정할 때 담합의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법원과 검찰이 무너뜨린 ‘세상의 정의’는 그런 조건에서만 회복될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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