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후보자가 지난 1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상호관세 시행이 다음달 2일로 예고된 가운데 미국 측이 새로운 무역 협정을 언급하고 나섰다. 대미 무역흑자 8위인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받을 수 있고 새로운 협정 체결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통상당국을 향해 “섣불리 뭔가를 약속하지 말고 최대한 ‘듣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선 충격 후 협상.’ 16일(현지시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상호관세 언급은 이렇게 요약된다. 루비오 장관의 발언엔 상호관세 시행 이후의 시나리오를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들어있다. 일단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해 온 상호관세가 예정대로 시행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각국과의 ‘협상’은 상호관세 시행 이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그동안과는 다른 ‘게임의 룰’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루비오 장관의 발언이 전해지자 한국에선 한·미 FTA 재협상부터 FTA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협정 체결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가 트럼프 정부에 한국의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규정을 풀어달라고 의견서를 제출한 지난3월12일 서울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소비자가 미국산 소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정효진 기자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우리의 부가가치세 제도(VAT)와 친환경차 보조금, 플랫폼 규제, 미국산 소고기 월령 제한 등을 문제삼고 있다”면서 “이것들을 위해 한·미 FTA의 전면 재협상까지 필요해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이 관심 갖는 이슈만을 따로 논의하는 ‘핀포인트 협상’ 정도가 현실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1기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FTA의 재개정을 업적으로 꼽았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뒤집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1기 트럼프 정부와의 FTA 재협상에서 한국은 ‘픽업트럭은 포기하고 철강을 지키는’ 전략을 썼다. 당시 한국은 관세 부과 예정이던 한국 철강엔 당시 수출량(2015~2017년 383만t)의 70% 수준인 263만t의 무관세 쿼터를 얻어냈다. 반면 픽업트럭의 관세 철폐 시기는 20년 늦추기로 했다. 미국 픽업트럭 시장 진출을 포기한 것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당시 협상에서 픽업트럭 포기가 킹핀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동의한다”면서 “LNG(액화천연가스) 등의 수입 확대로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를 줄여주고, 우리에게 타격이 크지 않은 분야의 관세 인상은 참아주는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과 FTA의 ‘틀’ 안에서 논의하는 게 유리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금융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벌이는 관세전쟁의 최대 문제는 불확실성으로, 미국의 요구를 한·미 FTA의 틀 안으로 가져와서 논의하면 불확실성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면서 “그 경우 핀 포인트 협상보다 지지부진해서 현상 변경이 더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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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통상당국이 섣부르게 협상에 나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 한국 통상 관계자들은 5월 이후에 그 자리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다”라며 “미리 어설프게 많은 것들을 약속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고, 지금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겠다는 얘기를 개별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약속들이 협상력을 가질 수 있게 한데 뭉쳐서 한 바구니에 잘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세전쟁 대비 와중에 ‘민감국가 지정’ 변수까지 돌출돼 통상당국은 미국과의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 정부 당국자들과 연쇄 접촉을 했던 안덕근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번주 미국을 다시 찾아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 등을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