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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윤석열 파면과 민주주의 사이

윤석열 구속은 취소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기일은 확인되지 않는 일주일을 보냈다. 다수가 예상하던 탄핵 인용이 뒤집혀 기각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체감상으로는 가장 길고 불안한 일주일이었다. 구속 취소 결정이 없었다면 그저 조금 긴 일주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책임한 법원과 노골적 편들기에 나선 검찰의 합작품으로 윤석열이 석방되자 또 무슨 기괴한 논리가 등장할까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상황이 탄핵 반대 세력에는 승리를 향해 가는 서사를 안겼다. 구속 취소 결정이 마치 무죄를 예비한 것처럼, 계엄 이후 부당하게 탄압당한 대통령의 정당성이 확인된 것처럼 주장하며 탄핵심판 결론도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퍼뜨렸다. 국민의힘은 탄핵 각하 주장을 들고나왔다. 절차적 시비로 실체적 진실을 흔들어보겠다는 심산이다. 윤석열 석방으로 탄핵 반대 세력이 ‘희망’을 맛봤다.

희망은 힘이 세다. 탄핵 반대 세력의 기대가 배반될 때 불복 행동은 더욱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불안한 이유인지 모르겠다. 윤석열 구속 취소로 불안이 번지자 광장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면서 윤석열 구속과 파면에 관한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말들도 나왔다. 신속한 파면이 더욱 중요해진 때라 얼마간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한 계절을 쌓아온 민주주의의 서사들이 아직 영글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석열 파면’과 ‘민주주의’ 사이에 그리 많은 이야기가 쌓이지 못한 것이다. 국회에서의 상속세 완화 경쟁이나 공론화까지 거친 국민연금 개혁안이 무시되는 상황이 민주주의를 의심하게 한 탓도 있다.

선거나 삼권분립 등 제도적 질서로 연상되는 민주주의는 ‘민중의 권력’이라는 어원을 가진 역사적 산물이다. 민중 권력은 계속하여 구성 중일 수밖에 없으므로 민주주의는 끝없는 서사로 채워지는 생물과 같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열린 광장은 그런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는 장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계엄 선포에 분노했고 각자의 동기로 광장에 나오게 됐고 각자의 경험을 넘어서는 새로운 희망을 마주했다. 1년이 넘도록 불탄 공장 옥상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박정혜·소현숙도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나중에’로 밀리는 삶을 거부하며 광장으로 나온 이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할 때에도 희망은 우리의 것이었다.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희망과 연결됐던 시간을 돌아본다.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리라는 기대, 함께하는 이들로부터 응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더욱 많은 말하기를 가능하게 했다. 여러 투쟁을 연결해가는 연대의 힘은 세상이 응답하게 만드는 ‘우리’를 발견하게 했다. 평등을 예감하며 민중의 권력을 감각하는 시간이었다. 희망이 다시 민주주의의 편에 있게 하려면 헌법재판소의 책무 너머를 말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에 응답하려는지,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려는지 더 많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19일을 ‘민주주의 수호의 날’로 정했다. 열흘이 넘어갈 공동의장단 단식에 한 끼 동조단식으로 마음을 모으며 광장에서, 각자 자리에서 민주주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날로 함께 만들어가자. 또 열흘 후에는 여러 단체들이 공동으로 준비하는 ‘가자! 평등으로 3·29 민중의 행진’이 열린다. ‘윤석열들 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로 민주주의의 길을 함께 내자.

탄핵 반대 세력의 주장은 탄핵 반대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군대를 앞세운 계엄이 정치를 대체할 수 있다고, 가짜뉴스와 혐오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우리’가 윤석열 파면과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와 희망을 연결하는 이야기들을 더 빼곡히 채워야 할 이유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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