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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눈도 못 말려…조선 하청노동자 고공농성장 찾은 ‘말벌 동지’들

김형수 지회장, 4일째 30m 철탑 농성

‘원청’ 한화오션 측은 아직 ‘묵묵부답’

연대 시민 “우리 요구는 노동환경 개선”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30m 높이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에게 아침 식사가 배달되고 있다. 탁지영 기자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30m 높이 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에게 아침 식사가 배달되고 있다. 탁지영 기자

18일 오전 10시20분쯤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교차로 30m 철탑 위로 새우볶음밥 등이 담긴 가방 두 개가 올라갔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깎인 상여금을 회복해달라고 요구하며 4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에게 땅에 있는 ‘동지’들이 배달한 아침 겸 점심식사였다.

이날 오전까지 내린 눈이 녹아 철탑 주변은 물 웅덩이였다. 비닐 한 장으로 밤을 버틴 김 지회장의 옷도 젖었다. 지회에 연대해온 ‘말벌 동지’인 레어(활동명)는 김 지회장을 “형수 동지”라 불렀다. 모자에는 ‘단결 투쟁’이라고 적힌 빨간색 머리띠가 둘러져 있었다. 간호사였던 레어는 지금은 매일 아침 한화빌딩 앞 농성장을 찾아 밤까지 지킨다. “이들의 노동환경이 나아지지 않으면 나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레어는 “10~20년 된 숙련노동자들의 연봉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조선업 호황기였던 2016년까지 하청노동자도 연 550% 상여금을 받아 기본급은 적어도 연봉은 안정적이었다. 2020년대 초반까지 조선업 불황이 이어지며 상여금이 전면 삭감됐다.

2022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외치며 51일간 파업한 결과 지회는 그 다음해 단체교섭에서 상여금 50%를 확보했다. 하지만 지난해 교섭에서 사내협력사협의회는 지회의 상여금 인상 요구를 거부했다. 원청인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협력사 노동자들에 대한 상여금 지급은 협력사 고유의 경영활동”이라며 책임지지 않고 있다. 또 “상여금이 삭감된 것이 아니라 기본급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상여금 회복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철탑 주변. 탁지영 기자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상여금 회복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철탑 주변. 탁지영 기자

지회는 협력사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을 피하기 위해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전환하는 편법을 쓴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청노동자의 임금이 실질적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농성장에서 만난 이학수 거제통영고성지회 조직부장은 18년차 숙련노동자다. 이 부장이 지난해 받은 시급은 1만1730원이었다. 지난해 최저임금 9860원보다 소폭 높은 수준이다. 이 부장은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시급에 일한 시간을 곱한 만큼 월급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지난해 6월 받은 임금명세서를 보면 잔업, 특근을 30시간 해 월급(실수령액) 279만6100원을 받았다.

지회는 “실질적으로 상여금 인상에 대한 결정권은 한화오션에 있고 현재도 하청노동자 상여금에 대한 재원은 한화오션에서 나오고 있다”며 한화오션이 교섭에서의 책임을 다하라고 촉구했다. 조선업종노조연대도 “원청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고 했다. 한화오션 측은 이날까지 농성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레어와 조합원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노동자의 극한 투쟁이 묻힐까 우려했다. 레어가 말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왜 저 사람은 저기에 올라갔는가’를 궁금해하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 모두 노동자면서 왜 배제하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의 요구는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는 것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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