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에서 18일 열린 ‘수니와칠공주’ 공개 오디션에 참가한 6명의 할머니와 수니와칠공주 멤버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작년 별세 서무석 할머니 빈자리
경쟁그룹 ‘텃밭왕언니’ 리더 등
평균 나이 77.5세…6명 도전장
이선화 할머니 ‘새 멤버’로 뽑혀
“(칠곡)왜관에서 ‘퍼런 선글라스’ 카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카이. 나도 래퍼 하러 왔수다.”
18일 오전 경북 칠곡군 지천면사무소. 파란색 선글라스에 꽃무늬 힙합모자인 ‘뉴에라’를 멋들어지게 쓴 강영숙 할머니(79)가 이같이 말했다.
이날 파랗게 염색한 머리에 헐렁한 야구점퍼 차림의 강 할머니는 자신의 ‘베스트 픽’으로 신발을 골랐다. 할머니의 신발은 오른쪽과 왼쪽의 색상을 서로 다르게 매치한 이른바 ‘짝짝이’였다.
강 할머니는 “패션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에 신경 썼다”며 “왜관에서는 내가 유명 인사다. 나 말고 누가 되겠냐”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강 할머니 옆으로는 거꾸로 쓴 힙합모자와 헐렁한 티셔츠, 번쩍이는 금속 장신구 등을 착용한 할머니들이 저마다 ‘스웨그’(swag) 넘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18일 열린 ‘수니와칠공주’ 공개 오디션에 참가한 한 할머니가 받아쓰기 시험을 보고 있다.
이날 지천면사무소에선 세계 최고령 할매래퍼 그룹인 ‘수니와칠공주’ 새 멤버를 찾는 공개 오디션이 열렸다. 지난해 10월 원년 멤버였던 서무석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를 채우기 위한 오디션이었다.
수니와칠공주는 2023년 8월 칠곡군 지천면에 사는 할머니들이 결성한 8인조 그룹이다.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뒤늦게 한글을 깨치고 랩에 도전했다. 그룹 구성원 평균연령은 85세다.
할머니들은 인생의 애환이 담겨 있는 직접 쓴 시로 랩 가사를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 세계 3대 국제 뉴스 통신사로 꼽히는 로이터와 AP, 중국 관영 중앙TV(CCTV), 일본 공영방송인 NHK 등도 할머니들을 취재했다. 대기업 광고와 국가보훈부·국무총리실 등 정부 정책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수니와칠공주의 새 멤버가 되기 위해 이날 도전장을 내민 할머니는 모두 6명. 이들의 평균나이는 77.5세였다. 이 중 대구에서 온 강정열 할머니(75)는 칠곡군으로 이사까지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할매래퍼 그룹의 멤버가 되려면 칠곡군에 거주해야 한다는 자격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다.
강 할머니는 “평소 트로트 부르기를 좋아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부끄러워 부르지 못했다”며 “젊은층의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랩을 즐겁게 하는 할머니들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 뽑아만 준다면 당장 칠곡으로 이사하겠다”고 말했다.
경쟁 그룹인 ‘텃밭왕언니’의 리더 성추자 할머니(82)는 더 큰 무대에 서기 위해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성 할머니는 “떨어지더라도 우리 그룹을 알리기 위해 텃밭왕언니 유니폼을 입고 왔다”면서 “힙합은 ‘북치기 박치기’다. 오늘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디션 중 혈액암 투병 끝에 별세한 서 할머니를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수니와칠공주 구성원인 이옥자 할머니(80)는 추도사를 통해 “형님은 하늘에서 그 좋아하는 랩 부르면서 즐겁게 지내고 계시지요”라며 “새로운 수니와칠공주가 만들어지면 우리 모두 건강하게 즐겁게 잘 놀다가 갈 테니 그땐 하늘에서 랩 한번 때려보자구요”라고 그리움을 전했다.
오디션은 초등학교 수준의 받아쓰기와 동시 쓰기, 애창곡 부르기, 자기소개 등으로 진행됐다. 마지막에는 모두 함께 무대에 올라 막춤 대결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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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거쳐 서 할머니의 마이크를 이어받은 주인공은 지천면 신1리에 사는 이선화 할머니(77)였다. 이 할머니는 랩 따라하기와 글짓기 등에서 두루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최고점을 얻었다. 심사에는 임의도 대한노인회 칠곡군지회장, 수니와칠공주 리더 박점순 할머니, 수니와칠공주 매니저이자 랩 지도를 맡은 정우정 강사 등이 참여했다.
이 할머니는 “랩을 부르며 어르신들에게 즐거움과 희망을 주는 봉사를 하게 됐다는 생각에 기쁘다”며 “서 할머니를 대신해 멋진 공연을 펼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