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일간지 “목표는 정치적 생존”
극우 연정 파트너들 압박·부패 의혹 영향
인질 가족들 반발…반정부 시위 재개돼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재개된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부상을 입은 남성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900명 이상 사상자를 낳은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공습과 관련해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며 “모든 전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부터 협상은 오직 전투 속에서만 이뤄질 것”이라며 공격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사실상 전쟁 재개를 못 박은 것인데, 그가 이처럼 협상의 판을 깨고 휴전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것은 자신이 직면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두 달여 만에 가자지구를 대대적으로 폭격하며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강경한 태도를 문제 삼았다. 하마스가 인질 석방과 미국의 휴전 중재안을 거듭 거부했다는 것이 그가 밝힌 공격 재개의 이유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공습 전까지 협상은 공전을 거듭하긴 했어도 계속 진행 중이었다.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걷자 하마스는 최근 2단계 휴전을 위한 회담을 시작하는 조건으로 미국·이스라엘 이중국적 생존 인질 1명과 다른 인질 4명의 시신을 돌려주겠다는 진전된 제안을 내놨는데, 이스라엘은 이를 “심리전”이라고 일축했다.
이집트 등 중재국은 하마스 측 제안을 이스라엘에 전달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네타냐후 총리실도 가자 공습 불과 하루 전 협상 대표단에 회담이 계속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안에 대한 응답 대신 공습으로 답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날 예고 없이 개시된 공습을 시작으로 가자지구에서 본격적으로 전투를 확대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전역에서 대대적인 폭격과 함께 베이트하눈, 칸유니스 등 가자 외곽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려 지상군이 곧 재투입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을 재개한 18일(현지시간) 영상 연설에서 “이것은 시작일 뿐”이라며 전투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가 밝힌 명분과 달리 공격 재개가 다분히 총리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국내용 승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네타냐후 총리의 진짜 목표는 끝없는 전쟁을 통한 정치적 생존”이라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네타냐후는 협상의 교착 상태를 깨고 하마스를 격파하기 위해 작전을 재개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일련의 시급한 자신의 정치적 목표, 즉 이타마르 벤그비르(전 국가안보부 장관)와 그의 극우 파벌을 정부에 복귀시켜 자신의 극우 연정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지난 1월19일 휴전에 항의하며 연정에서 탈퇴했던 극우 정치인 벤그비르는 이날 이스라엘군의 공격 재개 후 곧바로 연정 복귀를 발표했다. 네타냐후 내각은 재임명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검찰총장의 거센 반대에도 그의 장관직 재임명도 강행했다. 휴전이 시작된 이래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을 재개하지 않으면 연정을 무너뜨리겠다는 극우 연정 파트너들의 압력을 받아 왔다. AP통신은 “네타냐후가 영구적인 휴전에 동의하면 그는 정치적 위기에 빠져 15년 통치가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짚었다.
여기에 최근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과 최측근 인사들이 카타르로부터 거액을 수수했다는 이른바 ‘카타르 스캔들’ 의혹으로 국내 정보기관 신베트의 수사망에 오르는 등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습 하루 전 자신의 최측근을 조사 중인 신베트 수장 로넨 바르 국장을 해임하겠다고 밝히며 파문을 일으켰다. 야권은 물론 검찰총장조차 바르 국장 해임이 “불법 및 이해상충”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보기관 수장을 임기 도중 총리가 해임하는 것을 두고 수사를 무마하기 위한 것이란 거센 비판 여론과 함께 반정부 시위도 재개됐다. 그가 여론의 관심을 돌리고 총리직을 유지하기 위해 가자지구와 인질을 희생양 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대대적인 공습을 재개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전쟁 중단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장 인질 가족들은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인질들이 위험에 처했다며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공습이 인질들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위협하는 등 인질 가족들의 두려움은 커지고 있다. 인질 가족과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이날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주요 도시에서 당장 폭격을 멈추라는 시위를 벌였다.
아들이 가자지구 억류돼 있는 에이나브 장가우커는 이날 이스라엘군의 전투 복귀를 막겠다며 남부 가자자구 국경으로 향했고, 철조망을 넘으려다 제지당하기도 했다. 그는 시민들이 가자지구를 둘러싸는 ‘인간 띠’를 만들어 이스라엘군의 진격을 막자고 제안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으로 이틀 사이 최소 970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1월 불안정한 휴전이 시작된 이래 가장 치명적인 수준”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