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 김해국제공항 인근의 한 토마토 농가로 명산지 취재를 다녀왔다. 부산 강서구 대저동 일대에서 재배하는 대저토마토, 일명 ‘짭짤이토마토’가 제철맞이를 하는 시기다.
농산물 소비의 폭이 좁은 1인 가구라는 것이 변명이 될는지. 들어는 봤어도 먹어본 기억은 없었던 터라 사실 좀 짐작이 안 됐다. 과일은 물론 토마토처럼 열매를 식용으로 하는 과채류도 당도가 주요 품질 기준으로 작용한다. 근래 신선식품 코너에서 ‘○○브릭스 이상’이라는 홍보 문구를 심심찮게 발견하게 되는데, 이 브릭스(brix)가 당도를 백분율로 나타낸 단위다. 품질을 가늠하는 절대 지표는 아니나 브릭스 수치가 높을수록 열매가 맛있게 잘 익었다는 인식이 높다. 많이 사라진 풍경이지만 후식이나 간식으로 얇게 저미듯 썬 토마토에 하얀 설탕을 솔솔 뿌려 먹었던 시절도 있잖은가. 그런데 대놓고 짭짤한 토마토라니.
어찌 이 맛을 모르고 사셨냐고 되물은 내 또래 청년 농부가 때깔 좋은 열매를 골라 숭덩숭덩 썰어 주었다. 한입 베어 물자마자 “어머!” 하고 잠시 ‘동작 그만’ 상태가 됐다. 요즘 말로 ‘단짠단짠’의 조화가 대단했다. 산뜻하고 개운한,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종류의 단짠. 흐뭇하게 웃어 보인 농부가 알려준 그 맛의 비결은 대저의 땅심이다. 큰 대(大) 자에 물가 저(渚)자가 붙은 지명이 낙동강 하구에 형성된 삼각주라는 대저의 지정학적 위치를 일러준다. 삼각주가 농사에 적격이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여기에 더해 대저의 토양에는 상당량의 염분이 함유돼 있는데, 이것이 토마토의 수분 흡수량을 줄여 과육의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단짠으로 비유되는 특유의 감칠맛을 응축시킨다고 했다.
대저에서 토마토 농사가 본격화된 것이 1950년대부터라니까 타 지역에 비해 일찍이 토마토 재배를 시작해 오래도록 축적해 온 이곳 농부들의 재배 노하우도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실제 짭짤이토마토는 1990년대에 이르러 특화됐다. 더욱이 대저토마토는 품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완숙 토마토 품종으로 재배한다. 같은 토마토 종자라도 대저의 지리적 특성과 농가의 노력이 시너지를 내 전혀 다른 맛과 품질을 선보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현재 부산 대저토마토는 대표적인 지리적표시(geographical indication) 농산물로서 대저농협의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대저토마토’와 ‘대저짭짤이토마토’ 두 가지 등록상표로 전국에 유통된다.
대저토마토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명품 토마토로 자리매김하자 지역 농가에도 변화가 생겼다. 근 5년 사이 후계농을 중심으로 청년 창업농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대저토마토 농가 수와 매출이 증가하는 추세다. 우리 농업의 현실을 생각하면 드물고도 반가운 현상. 하지만 마냥 싱글벙글할 수가 없다. 최근 대저토마토 농가의 최대 이슈는 농지 확보다. 신도시 개발사업인 에코델타시티 조성이 추진되며 이미 상당 규모의 농지가 수용된 데다 개발사업이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 급기야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대상에 대저가 포함됐다. 지난해 12월 시가 대저토마토를 부산미래유산으로 선정한 것이 무색해졌다. 농지 이전과 함께 양액재배나 작목 전환을 고려하는 농가가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토마토 품종만 5000개가 넘는다니 대저토마토 하나쯤 슬쩍 사라진다 해서 그리 아쉬울 것 있겠나 싶을지도. 문제는 이것이 비단 대저토마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언젠가부터 ‘장보기가 무섭다’는 말이 관용구처럼 쓰인다. 표면적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이 작황과 장바구니 물가를 좌우하는 것 같지만 먹고사는 데 가장 근간이 되는 농업이 우리 삶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본질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50%를 밑돈다. 식량주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했다고 볼 수 없는 지표다.
먹방에 열광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을 새삼 실감케 된 부산행이다. ‘잘사는’ 것만큼 ‘잘 먹고사는’ 데 보다 예민하고 치열해지자 다짐하게 된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