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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지나도 여전히 무대서는 ‘만선’…“동시대성 고민 계속”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선>은 자본가에게 수탈당하는 어민들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국립극단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선>은 자본가에게 수탈당하는 어민들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국립극단

<만선>은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원작을 집필한 천승세 작가는 1960년대 자본가의 억압에 시달리며 절대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서민들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려냈다. 6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사회 구조도 변했다. 시대의 고민과 호흡해야 하는 공연예술 작품으로서 <만선>은 고민에 빠졌다.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기 위해 캐릭터 재해석에 열을 올리는 등 새로운 시도 중이다.

지난 6일부터 서울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만선>의 큰 흐름은 이전과 같다. 무당의 방울소리와 함께 막이 오른다. 경사진 무대 위에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집 한채가 서 있다. 풍어를 기원하는 굿 한판이 이어진 뒤, 극의 주인공 곰치가 등장한다. 죽기 전에 자신의 배 한척 가지는 것이 꿈인 곰치는 칠산 앞바다에 찾아온 부서(보구치) 떼를 통해 만선의 희망을 본다.

희망은 찰나의 꿈이다. 선주 임제순은 빌린 돈에 대한 무리한 담보까지 요구하며 배를 묶어버린다. 고기 떼를 거둬드리려는 곰치의 꿈은 가로막힌다. 곰치 가족에게 풍어를 알리는 징 소리와 ‘만선’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고통으로 다가온다.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선>은 자본가에게 수탈당하는 어민들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국립극단

한국적 사실주의 연극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만선>은 자본가에게 수탈당하는 어민들의 비극적 삶을 그렸다. 국립극단

곰치는 피해자다. 그러나 더 큰 피해자는 그의 가족이다. “손에서 그물을 놓는 날은 차라리 배를 가르는 날”이라며 바다에서 죽는 것이 곧 “뱃놈 팔자”라고 믿는 그는 임제순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결국 그의 고집이 어린 자녀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등 위험에 빠뜨린다. 가부장적인 곰치의 모습에 극의 주인공임에도 요즘의 관객이 그에게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연출진도 이같은 부분을 우려했다. 2021년 이후 극을 이끌 고 있는 심재찬 연출가는 지난 14일 통화에서 “만선을 이 시대에 다시 해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극본을 일부 수정하기로 했다. 2021년 작품을 올리기 전 연출진은 천승세 작가를 찾아 각색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심 연출은 “당시 작가가 거부했다면 작품을 안하려고 했다. 천 작가께서 각색을 승낙해 줘 이 같은 만선이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시대성을 살리려는 노력은 여성 캐릭터인 슬슬이와 구포댁을 통해 구현했다. 작품에서 곰치의 딸 슬슬이는 비록 비극적 결말을 맞지만, 또 다른 선주 범쇠에게 저항한다. 원작에는 없던 부분이다. 구포댁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심 연출은 “곰치는 세상에 저항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것을 구포댁을 통해서 하려고 했는데 이번엔 사정상 하지 못했다. 연출로서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그는 구포댁에 대해 “자식을 모두 바다에 잃고 마지막 남은 아이 마저 아기 예수처럼 바다로 떠나보낸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라 임제순에게 대항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봤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인물”이라며 “이후 다시 만선을 무대에 올릴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구포댁을 좀 더 새롭게 표현하겠다”고 했다.

1964년 희곡 현상 공모에 당선돼 초연될 당시의 <만선> 연극 포스터. 국립극단

1964년 희곡 현상 공모에 당선돼 초연될 당시의 <만선> 연극 포스터. 국립극단

극의 주인공인 곰치에 대해서는 그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필요성을 역설했다. 심 연출은 “열심히 일하는 곰치가 배 한척을 못 사는 것은 결국 기득권이 각종 자본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고 이 같은 현실은 현재도 같다. 곰치라는 인물은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60여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기득권의 횡포에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곰치네 가족을 통해 현시대를 바라보는 것은 여전한 현재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극의 말미 약 5t의 물이 무대 위로 뿌려지는 장면은 <만선>의 하이라이트다. 비바람의 냉기가 멀리 떨어진 객석까지 전달되는데, 만선의 비극이 관객에게까지 흘러내린다는 느낌이 든다.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고 선 곰치와 구포댁의 모습도 관객에게 여러 감정을 들게 한다. 공연은 오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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