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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쌀이 그렇게 나쁩니까

8만㏊, 평수로 환산하니 2억4200만평이다. 30평 아파트를 떠올려보니 가늠도 안 되는 엄청난 넓이다. 계엄 사태로 엄혹했던 지난해 말, 농식품부가 2025년 주요 농정 목표로 벼 재배면적 8만㏊를 감축하겠다고 뜬금포를 날렸다. 벼 재배면적 70만㏊의 12%인 8만㏊를 축소하면 쌀 40만t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속이다. 쌀 40만t은 매해 한국이 수입하는 쌀의 양이다. 쌀은 덜 먹는데 벼농사가 쉬워 쌀 생산량이 줄어들지 않으니 관리 비용이 들어 감산해야 한다는 기조는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느닷없이 8만㏊를 줄이라 하니 농민과 행정업무를 맡은 지자체 공무원들 모두 어리둥절하다. 1970년대 통일벼를 심지 않으면 단속 공무원들이 모판을 엎었다더니 2025년에는 대체 무엇을 엎을 것인가.

일단 밥쌀 말고 다른 농사를 지어보라 한다. 자급률이 낮고 쓰임이 많은 콩, 밀, 옥수수, 깨, 조사료를 전략작물로 지정하고, 빵 만드는 가루쌀(분질미)을 심는 것도 권하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거나 아예 휴경을 하는 것도 감축 방법으로 제시했다. 강제가 아닌 자율조정이라 하면서도 벼 재배 감축 목표치를 광역지자체마다 할당하고 어떻게 줄일 것인지 계획을 내놓으라 압박 중이다. 벼농사가 없는 제주도는 할당량이 없고, 쌀 주산지인 전북은 도내 벼 재배면적 10만4348㏊의 11.6%인 1만2163㏊를 줄이라지만 3000㏊ 정도가 겨우 가능할까 말까다. 간척지는 아예 2030년까지 벼 재배 0%를 달성하라 추동하고 있다. 호남보다는 할당량이 적어도 여전히 농촌사회에서 벼농사는 농업 수입의 중요한 근간이다. 하여 목표치가 높든 낮든 지자체마다 할당량을 줄여달라 아우성이다.

콩이나 깨를 논에 박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펄인 논에 흙을 더 채우고 물이 잘 빠지게 해야 한다. 그나마 벼는 물에 잘 견디지만 콩과 깨 같은 밭작물은 물에 잠기면 끝장이다. 그래서 배수시설을 잘 갖추어야 하고 이는 돈을 박는 일이다. 여기에 판로도 걱정이다. 쌀 대신 콩으로 작목이 몰리면 기존 논콩 농사를 짓던 농가는 콩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한걱정이다. 국산콩 두부와 된장 가격이 외국산에 비해 월등히 높아 소비자들도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이런 마당에 국산콩 생산이 늘어난들 콩나물, 두부, 장류 가공의 원료로 국산 콩이 흔쾌히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벼생산 조정제로라도 친환경 농업이 확대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사업의 목표가 쌀 감산인데 친환경 쌀도 쌀이지 않으냐 한 농민은 반문했다. 아니면 친환경 쌀농사에 뛰어들었다가 아예 망쳐서 쌀 감산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것이냐고도 했다. 정부는 2025년까지 친환경 인증 농지를 10%까지 늘리겠다 했으나 겨우 4.5%다. 친환경 농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과 소비촉진 방안이 필요하다는 친환경 농업계의 호소에도 뭉그적대던 정부다. 외려 친환경 인증제도는 점점 까탈스러워져 인증에 탈락한 농민도 많다. 친환경 농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박한 데다 판로 확보도 어려워 제값은커녕 경매에도 부치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하여 2020년 이후 친환경 농업 규모는 외려 쪼그라들고 있다. 그간 내놓은 자식 취급하다 가세가 푹 기울어진 뒤에야 집안 제사를 떠맡으라 불러들이는 꼴이다.

친환경 농업은 풀 맬 결심을 세우는 것이요, 제초제와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이다. 우렁이가 먹성 좋게 논의 풀을 뜯어먹는다 한들, 일반 논보다는 당연히 피사리를 자주 해야 한다. 논둑의 풀도 일일이 사람이 깎아야 한다. 허리 굽은 고령 농민이 기계 부려 농사를 이어온 벼농사에 논둑 깎는 인력까지 부려야 한다면 생산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차라리 농민들에게 벼농사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모판을 갈아엎겠다 솔직히 말하라. 그러면 최소한 기대도 하지 않고 헷갈리지도 않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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