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책과삶]범죄로 1만여명을 살린 남자, 위조범 카민스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책과삶]범죄로 1만여명을 살린 남자, 위조범 카민스키

아돌포 카민스키가 19세이던 1944년 사진제판 작업실에서 찍은 자화상. 빵과장미

아돌포 카민스키가 19세이던 1944년 사진제판 작업실에서 찍은 자화상. 빵과장미

어느 레지스탕스 위조범의 생애

사라 카민스키 지음 | 이세진 옮김 | 빵과장미 | 272쪽 | 2만 2000원

1944년 파리, 나치가 곧 유대인 가족을 체포한다는 소문이 거리에 퍼진다. 19세인 아돌포 카민스키는 유대인 어린이 300명이 국경을 건널 수 있도록 사흘 안에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야 한다. 출생신고서 등 900개 이상의 위조 서류가 필요하다. “1시간 안에 위조 신분증 30개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1시간 잠들면 아이들 30명이 목숨을 잃는다”는 생각에 카민스키는 밤새워 작업하고, 서류를 모두 만들어낸 뒤에야 정신을 잃고 기절한다.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조 신분증 서류를 만들어 1만여명의 목숨을 구한 아돌포 카민스키에 대한 얘기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딸 사라 카민스키가 아버지의 일생을 스파이 소설처럼 그려냈다.

책은 카민스키가 위조 서류를 만드는 레지스탕스가 된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카민스키는 1925년 아르헨티나의 러시아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가난한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열세살 때부터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한 후 유대인은 공장에서도 추방됐고, 카민스키는 염색 업자의 견습공으로 들어간다. 먹고살기 위해 익힌 염색 기술은 이후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인다.

나치의 폭압은 거세져갔고, 1943년 카민스키 가족은 파리 외곽의 드랑시 수용소로 끌려간다. 당시 드랑시에서 유대인 수만명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가족의 국적이 아르헨티나로 돼있다는 점을 이용해 아돌포의 형인 폴이 아르헨티나 영사에 필사적으로 청원한 덕에 이들은 풀려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카민스키 가족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향했을지 모른다.

목숨을 건졌다는 기쁨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왜 나만 살아났는가’라는 자괴감이 카민스키를 덮쳤다. 레지스탕스 조직을 접한 그는 자신의 염색 기술에 관심을 갖는 그들과 함께 본격적인 위조 서류 만들기에 돌입한다. 그의 위조 실력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져 카민스키의 작업실에는 일주일에 최대 500건의 주문이 쏟아졌다. 카민스키는 그렇게 “시간과 싸우고 죽음과 싸우는 경기”에 몰두한다.

전투를 수행하는 업무는 아니었지만 유대인을 살려내는 이 같은 작업을 나치가 순순히 두고 보진 않았다. 그와 함께 일하던 동지 일부는 드랑시 수용소로 끌려갔고 결국 아우슈비츠로 보내졌다. 카민스키 가족과 달리 그들은 수용소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위조범으로서의 삶에 지치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희생이 지겨웠다. 곡예 부리듯 허다한 일을 해내고,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허구한 날 밤을 새우거나 두 시간씩 쪽잠을 자고,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행이 붙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내 아이들도 자주 못 보고…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내 손에 달린 이들의 목숨을 생각하면 자기 연민 따위는 사치였다.” 카민스키는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카민스키의 위조 작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계속됐다. 팔레스타인에 새 조국을 건설하려던 유대인, 제국주의 프랑스에 맞서 싸운 알제리인, 베트남의 전장에서 탈영한 미군 병사, 혁명의 불길이 타오른 남미의 망명자 등이 카민스키가 만든 위조 여권으로 목숨을 건졌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그의 선한 의도가 언제가 좋은 방향을 이끄는 것만은 아니다. 유대 국가 건설의 꿈을 품고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간 동지들이 아랍인을 적대시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는 동지들과 결별했다. 카민스키는 그들을 도왔던 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정부의 훈장 제안은 거부한다. 이후 이스라엘 땅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다.

카민스키의 삶은 그가 거리의 비행 청소년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특수교사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딸이 아버지에 대한 전기를 쓰게 되며 세상에 자세히 알려진다. 책을 쓰자는 딸의 제안에 카민스키는 “사라, 공소시효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니?”라고 물었다. 죽음에 직면한 이들을 살려낸 대가로 평생을 위험에 시달린 그의 생애가 그려지는 질문이다.

책은 2009년 출간됐다. 프랑스 현지에서 크게 화제가 됐다. 이후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위조범>이 만들어졌고, 2016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카민스키는 2023년 1월 97세 때 세상을 떠났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