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에 할인분양을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최미랑 기자
정부가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호를 사들이기 위해 건설사로부터 오는 4월 1일부터 신청을 받는다. 지방의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한 취지이지만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라는 매입임대의 본래 취지가 흐려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 예산이 LH가 기존 저소득층과 고령층에게 공급하기 위한 다가구·다세대 주택 등 매입 예산을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저렴한 임대료로 취약 계층에게 공급하는 임대주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주거복지 축소를 막기 위해 복잡한 지원 조건을 통일한 ‘통합 임대 주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축임대 예산으로 지방 미분양 매입
“취약계층에 주로 공급되는데….”
국토교통부는 지난 21일 공고를 내고 지방 미분양 아파트 매입 절차를 본격화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LH는 순차적으로 사들인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전환형 든든전세’ 유형의 임대주택으로 공급할 에정이다.
매입 예산은 약 3000억원이다. 이는 LH가 기존에 확보한 5000억원의 기축매입임대 예산에서 충당한다. 기축매입임대는 LH가 기존의 민간의 다가구·다세대 주택 등을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즉, 기존 민간 주택 매입 예산의 절반 이상을 지방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위해 쓴다는 것이다.
이는 LH가 세운 올해 기축매입임대 공급 계획과 방향이 크게 다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LH가 기존 주택을 사들여 전국에 공급하려는 임대 목표 물량은 총 3250호다. 이중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주택이 2541호로 전체의 78%에 달했다.
국토부의 발표대로라면 당초 계획된 수도권 2541호를 포함해 전체 기축매입임대 공급 계획이 크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정작 공공 임대 주택이 많이 필요한 수도권 지역에서 물량이 줄어들고, 수요가 낮은 비수도권 지역의 공공 임대가 늘어나는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방 미분양 매입 때문에 전반적으로 기축 비아파트 매입임대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앳부동산] 지방 미분양 3000호 사들이면 취약계층 임대주택 줄어든다고?](https://img.khan.co.kr/news/2025/03/23/news-p.v1.20250323.fb09af07d8cd47379f00704612248b90_P1.jpg)
더 큰 문제는 기축매입임대 축소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매입임대 제도 자체는 취약계층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저렴한 주거비로 살 수 있도록 정부가 소규모 공공 임대 주택을 직접 매입해 제공하자는 취지다. 특히 기축매입임대는 빌라 등 노후된 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으로 통상 도심의 저소득층·고령층에게 공급된다.
반면 정부가 LH의 기축매입임대 예산을 헐어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사서 공급하겠다는 ‘든든전세’는 애초에 취약계층이 아닌 중산층을 겨냥해 만들어진 임대주택 유형이다. 든든전세는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한부모 가족 등 취약계층이 주로 혜택을 받는 ‘일반’ 임대유형보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비싸다. 든든전세의 임대료가 시세의 90% 수준이라면, 일반 임대유형의 임대료는 시세의 30%에 불과하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신축과 달리 기축매입임대는 취약계층 위주로 공급되어온 만큼 지방 미분양 매입에 해당 예산을 쓰더라도 취약계층에 공급되는 물량 자체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에 정부는 올해 신축매입임대를 크게 늘릴 계획이기 때문에 보완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신축매입임대는 정부가 새롭게 지어진 주택을 임대용으로 사들이는 제도다. 빌라보다는 10층 이상의 오피스텔이 많아 신혼부부·청년층이 주로 이용한다. LH는 민간사업자와 사전에 약정을 맺고 준공 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왔으며, 정부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11만호의 약정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신축매입 중에서도 신혼부부·청년뿐 아니라 취약계층을 위한 ‘일반’ 유형을 공급한다”면서 “미분양 매입으로 기축 3000여호가 줄어든다 해도 신축매입으로 확대되는 물량이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LH가 공개한 올해 신축매입임대 목표치는 5만4553호 이상으로 이중 취약계층을 위한 일반 유형은 1만1007호다. 전체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전년도 목표치(7007호)보다 4000호 늘었으나 주택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신축매입의 특성상 실제 공급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 기간만큼 취약계층에게 돌아갈 물량이 적다는 뜻이다.
중산층 중심의 ‘든든전세’만 주력하나
“복잡한 매입임대 유형 통합해야”
향후 매입임대에서 ‘든든전세’가 차지하는 물량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올해 LH가 밝힌 든든전세 매입 목표는 1만4000호였으나, 지난해 국토부는 올해까지 매입할 11만호의 신축매입임대 물량의 절반가량인 5만호 이상을 든든전세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일각에선 정부가 주거복지보다는 건설경기 부양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신혼부부·청년 등의 주거 문제에 대응할 필요성은 있지만, 건설 경기 대응을 위해 중산층을 겨냥한 대규모 전세형 신축임대에만 정부가 주력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취약계층이 소외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안으로 ‘통합 임대주택’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매입임대 유형은 일반, 청년, 기숙사형, 신혼·신생아Ⅰ·Ⅱ, 다자녀, 고령자, 든든전세 등으로 지원 조건과 공급 주택에 따라 각각 나눠져 있다. 그는 복잡한 ‘칸막이’를 없애자고 주장했다.
그는 “예컨대 3000호의 지방 미분양 아파트 전량을 중산층 중심의 든든전세로만 공급할 것이 아니라, 모든 조건의 수요자에게 열린 통합 임대로 공급한 뒤 대상자의 소득 조건에 따라 임대료를 차등 부과하는 체계를 만든다면 취약계층 소외 문제가 덜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번 지방 미분양 아파트 매입이 공공임대의 틀에서 이뤄지긴 하지만, 지방 건설 경기 부양이라는 목적 하에 이뤄진 만큼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수도권·취약계층을 위한 기축임대 물량이 수요 대비 부족해진다면 정부도 확대 공급할 유연성은 갖고 있을 것”이라며 “현재는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문제가 워낙 심각한 만큼, 일단 매입에 적극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