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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에도 계속 펄럭일 무지개를 기대하며

1997년 1월 추운 겨울로 기억한다.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하는 노동자 총파업이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됐을 때 대학 1학년생이었던 나도 함께하고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모였던 사람들과 깃발들 사이, 저 멀리 구석진 곳에서 펄럭이고 있던 무지개 깃발 하나를 발견했다.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까이 가 보았지만, 함께 앉아 있을 용기는 없었다. 그들은 마치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처럼 주변부로 밀려난 듯 보였고, 나는 숨겨왔던 성정체성이 그들에게 발각될지 몰라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그 집회에 참석한 이후 막연한 두려움은 뜨거움으로 바뀌었고,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노동운동과 연대하기 위해 나온 ‘한국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 소속 회원들이었다.

2025년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며 열린 광화문 광장 집회에서 다시 무지개를 만나고 있다. 저 멀리 외롭게 혼자 서 있는 깃발의 느낌이 아니다. 연대의 의미를 담아 이곳저곳에서 펼쳐 든 무지개 깃발 덕분에 오히려 성소수자 단체들이 조성한 ‘무지개존’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정치하는 엄마들, 금속노조, 세종호텔노조 등의 단체 깃발이, 투쟁의 결기를 보여주는 민주노총 머리띠가 무지개색이다. 농민들은 남태령 시위 뒤에 감사의 의미를 담아 무지개떡을 준비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용기 있게 밝히며 시민 발언을 이어가는 광장의 주인들을 매번 만나고 있다. 매일 개최되는 집회는 사회적 약자를 호명하고 평등을 약속하며 시작한다. 주변이 아닌 광장의 중심에서 확인되는 무지개는 분명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넘어 연대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탄핵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설마’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오히려 탄핵을 기정사실화하고 ‘평등’이라는 사회대개혁 과제를 어떻게 실천해 나갈지 상상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한다며,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인권의 과제를 후순위로 미루고, 혐오 범죄에 가까운 테러를 경험했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조차 찾지 않는 거대 야당의 태도를 동시에 보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 선고 이후, 광장의 사람들은 어디에 서 있을까.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목소리 높였던 사람들은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광장에 우뚝 서 있던 무지개 깃발은 계속 펄럭일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과 함께 기대를 갖는 것은 광장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과 다른 2025년의 모습은 분명 역사의 진보를 증명했고, 평등을 쟁취할 수 있는 ‘서로’를 확인하게 한 계기가 됐다. 사회적 약자가 싸우는 곳에 무지개 깃발이 계속 펄럭일 수 있다면, 분명 다른 사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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