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국가 운영원리는 ‘공화정’
협상과 타협 통한 다원주의 추구
권력 독점 안 돼…함께 잘 살아야
공동체의 화합 이루는 정치 절실
공화정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놀랍게도 로마는 제정을 시작하기 전 450여년간 공화정을 운영했다. 로마가 당시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데에는 공화정이란 정체가 기여한 바 컸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 임시헌장 제1조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정으로 함”이라고 규정하여 민주공화정을 정체로 삼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왕정 아래 사람들은 지겹고 고통스러웠을 게다. 왕정이 망한 지 10년도 안 되어, 구시대의 유물을 내던지고 공화국의 탄생을 염원하는 새로운 목소리의 정치 문서가 이 땅의 역사에 등장한 것이었다.
제헌헌법 이래 늘 민주공화국임을 표방하였으니 이 나라의 기본적인 운영원리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다. 공화주의는 군주가 아닌 국민이 주권을 가지면서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치원리다. 민주정이면 됐지 왜 공화정일까. 민주정이 지닌 당파성과 전제성을 막기 위해서다. 대통령이든 의회 다수당이든 간에 다수결 원칙의 힘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 다시 그 다수결 원칙으로 압제적이고 분열적인 권력 행사를 하게 되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소수를 소외시키는 악정이 된다.
늘 부르짖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는커녕 외려 불법 계엄을 선포하여 시대착오적 독재를 꿈꾸던 자가 탄핵심판에 부쳐져 있다. 그의 실정 목록은 길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항목은 우리가 어렵사리 지켜온 공화정의 안녕을 부수려 한 점일 것이다.
공화정의 기반으로 논자들은 법치주의, 공공선, 시민적 덕성을 든다. 왜 법치주의인가. 법으로 다스린다고 해서 법치주의가 구현됐다고 할 일이 아니다. 법을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는 장치로 쓰는 것, 이것이 법치주의의 요체다. 공화정의 가장 큰 적은 독재다. 독재는 세력의 균형을 모른다. 양보와 타협을 모르고, 반대 세력이 있으면 폭력으로 밀어내고 부순다. 그리하여 독재는 필연적으로 법 위에 군림한다. 법이란 평등하게 그리고 보편적 원칙에 따라 적용되어야 하지만, 독재는 법을 사용할 때 선택적이다. 반대 세력은 법으로 두들겨 패고 얽매며, 내 편은 뭘 잘못해도 모른 체한다. 불가피하게 내 편에 법을 쓰더라도 꼼수로 벌을 면하게 해 주거나 늑장을 부린다.
공화정에서는 권력을 사유화할 수 없다. 공화정은 다원주의다. 다원주의는 여러 세력의 균형과 견제를 지향한다. 권력의 분점과 상호 견제만이 정치공동체의 온전함을 유지할 수 있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권력분립을 규정하고 있지만, 설계된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기제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내란이 일어나는 것은 분점정부의 탓이 아니라 그 분점정부를 깨뜨리려는 악성의 탓이다. 여기에 대고 그럴듯한 딴소리를 하는 자들은 대개 수상하다.
거칠게 말해서, 자유주의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라면, 공화주의는 우리 모두가 가능한 최대한으로 잘 살아보자는 것쯤 될 것이다. 공공선을 찾자는 것이다. 정치공동체가 추구하는 이익의 최대치를 미적분 하듯 계산해 낼 수는 없지만 공화정에서는 거기에 가까워지도록 애써야 한다. 그 과정과 수단이 공론장에서의 토의이며 협상과 타협이다. 난 그런 거 싫다며 상대를 구속하고 압수수색하고 그러다가 아예 계엄으로 ‘수거’하려 들면 안 된다. 제멋대로 자기 세력의 이익만 도모하는 독식의 폐해를 막아내자는 것, 이것이 공화정의 기본 이념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적 이익 추구를 위해 저지르는 폐해 중 대표적인 것이 부패다. 부패는 권력을 쥔 패거리들의 삿된 이익 추구로 공익을 해치는 점에서 악하지만, 더 나아가 사람들의 시민적 덕성까지 망가뜨린다. ‘어차피 막된 세상, 너는 너대로 해먹고 나는 나대로 해먹자’는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탄핵이 마무리되고 대선을 치르고 나면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정부가 어떤 철학과 이념으로 나라를 꾸려갈 것인가다. 정치권력이 다시 공화국의 이념을 잊은 채 권력을 독점적으로 휘두른다면 이 나라는 암울한 전제적 통치에 시달릴 터다. 검찰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재빠르게 그 대통령에게 빌붙어 이른바 선택적 정의를 실행하려 들 것이다. 더욱이 국회가 발맞추기에 급급하고 사법부마저 그럭저럭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행태를 보인다면 어쩔 것인가. 무지하고 무능하고 무도했던 윤석열 정부의 기이한 행태를 우리 정치가 되풀이하고, 내전 양상이 거리와 광장을 뒤덮을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다가올 세상에서는 ‘공화(共和)’라는 말의 아름다운 뜻 그대로 공동체의 화합을 이루려는 정치적 상상력이 구현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