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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를 찾는 풍경

부패한 독재자 타도가 곧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1970~1980년대를 지나는 동안,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독재 타도!”에만 투영했기에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오직 독재(자)인 줄로만 알았던 탓이다. 독재(자) 종식 후에 올 일상과 관계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해 상상하지 않았기에, 민주화의 ‘주역’이자 ‘586 가부장’ 정치인들은 2017년 광장에서 그들과 함께 촛불정권을 탄생시킨 여성들의 목소리를 법과 정책에 반영하기보다, 집권기 내내 집안을 망하게 할 ‘암탉의 울음’쯤으로 치부했다. 당 지지율이 흔들릴 때면 자신들의 부족한 정치력을 돌아보기보다 여성가족부와 산하 기관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며 으름장 놨다. 그랬기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황당한 주장과 ‘여.성.가.족.부.폐.지’라는 더 황당한 공약 앞에 겨우, 그러나 당연하게도 5년 만에 무너졌다.

지금은, 여성혐오로 호기롭게 출발한 대통령이 벌인 계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이견이 들어설 자리 없는 위법이기에 탄핵 결정을 이처럼 오래 기다리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재판관을 향해 왜 꾸물거리냐는 원망과 질책의 와중에 잊혔던 사실 하나가 떠오른다. 2017년에도 그랬듯, 대통령 탄핵은 헌법에 따른 행정 절차일 뿐, 그것으로 민주주의가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탄핵 요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는 그것이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존재들의 공존’이 가능한 민주사회의 도래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그 자명한 사실 말이다.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 중 국회 측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1980년대 대중가요의 가사를 빌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에 대해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탄핵을 통해 계엄 이전의 상태로 한국 사회를 되돌리는 것이 헌재가 해야 할 일임을 설득하려 했던 것 같다. 이 취지에 온전히 동의하면서, 그 ‘제자리’를 ‘과거 원래의 자리’가 아니라 ‘미래에 꼭 가야 할 자리’로 이해하려 한다. 2025년 광장의 탄핵 지지자 중 어떤 이들이, 옆에서 같은 구호를 외치는 성소수자 단체 회원에게, 늘 그래왔던 듯 망설임 없이 야유하며 밀쳐내는 일이 있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독재자를 부정하는 광장의 구호가 민주사회 구성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될 수 없음을 방증하는 광경이자, 탄핵 이후의 제자리가 ‘과거 그 자리’여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민주노총 김진숙 위원은 이번 광장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 사고 피해 유족 행정안전부 장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제안하며 민의를 ‘진짜로’ 대변할 더 넓고 더 구체적인, ‘다시 만난 세계’의 일상에 대한 상상력을 공유했다. 이런 상상 없는 구호로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만이 최선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헌재의 시간인 지금, 탄핵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을 믿고 기다리자. 대신, 탄핵 이후 ‘도돌이표’ 하지 않도록 ‘다만세’에 어울릴 민주주의의 구체적 모습에 대해 희망을 담아 상상하고 토론하자.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아닐는지.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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