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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에 극장 갈까, 유아인 때문에 돌아설까···승부수 둔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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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에 극장 갈까, 유아인 때문에 돌아설까···승부수 둔 '승부'

영화 <승부> 속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9단을 연기하고 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승부> 속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9단을 연기하고 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달은 차면 기운다.

‘국수’ 조훈현 9단(72)은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들 가운데 최초로 9단을 딴 인물이다. 1962년 만 9세 7개월에 프로에 입문한 그의 최연소 기록은 60년 넘은 지금까지 깨뜨려지지 않고 있다. 신동으로 프로기사의 세계에 입문한 그는 한동안 한국 바둑계에서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으로 대접받았다. 국수전, 왕위전, 명인전 등 전관왕을 달성한 최초의 기사이자 3회 달성한 불멸의 기록 보유자가 조훈현이었다. 하지만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도 후배 기사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은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다.

여기까지는 스포츠계의 천재급 스타 선수들이 대부분 겪는 루트이다. 비단 스포츠뿐 아니라 어느 분야든 왕좌는 영원하지 않다. 조훈현에게 특이한 점이라면 왕좌를 가로챈 상대가 하필이면 집에 들여서 숙식을 함께 하던 내제자 이창호 9단(50)이었다는 점이다. 바둑에 재능이 있다기에 집에 들여서까지 키운 제자가 이후 세계 바둑 역사상 최강자로 꼽히는 이창호였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흔해 빠질 뻔했던 1인자의 세대교체 이야기는 ‘호랑이 새끼를 키운 스승’의 청출어람 스토리가 담긴 인간극장으로 승격이 된다.

문제는 이 또한 모두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세대차를 감안하더라도 구글링 한번이면 전후맥락은 물론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좌르르 다 나오는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승부 이야기를 영화라는 밥상에 어떻게 차려낼지 감독과 배우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흔히 바둑을 인생에 비유한다. 정석, 묘수, 승부수, 자충수, 사활 등등 사전 한 권이 뚝딱 만들어질 만큼 바둑용어는 인간사를 품고 있다. 모호하고 추상적이기만 한 인간의 삶과 우리 주변의 세계는 바둑판 위의 돌과 수(手)로 구체화되고 분석된다. 동양에서 바둑이 인간과 사회의 알레고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시나리오를 쓴 김형주 감독은 영화화를 준비하면서 잡지 <월간 바둑>을 30년치 가까이 정독했다고 한다. 영화에 ‘인생 격언’이라고 할 만한 명대사가 여럿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감독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월간 바둑 잡지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더라”라며 “1970년대에는 세로쓰기에다 한자가 많아 읽기 쉽지 않았지만 대국 관전기를 쓰신 기자분들이나 프로기사들의 필력이 너무 좋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영화 <승부> 속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9단을 연기하고 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승부> 속 배우 이병헌이 조훈현 9단을 연기하고 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실화 바탕 영화의 화룡점정은 배우들이 찍는다. 연기계의 ‘국수’ 이병헌의 조훈현 연기는 실제와 싱크로율이 꽤 높다. 정적인 세계의 바둑을 표정 하나로 풀어내야 하는 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어려운 연기다. 이병헌 배우는 인터뷰에서 “손가락으로 돌을 집고 놓는 걸 레슨 받은 뒤 집에 돌아와 어린 아들을 앞에 앉혀 놓고 오목을 두고 했다”라며 “바둑돌 놓는 손 모양이 중요했기에 연습하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아들이 없을 땐 부인인 이민정 배우가, 때론 장인어른이 ‘오목 대국’의 맞수가 돼 줬다.

조훈현 9단의 실제 모습.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조훈현 9단의 실제 모습.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아인의 이창호 연기도 흠 잡을 데 없다. 주저주저하며 말을 웅얼거리는 유아인의 말투는 익히 알려진 ‘돌부처’ 이창호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과 잘 들어 맞는다.

조연들의 감초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의 손목을 못 쓰게 만든 조우진 배우가 영화에서는 가상의 프로기사 남기철 역을 맡았다. 이번에는 조훈현에게 숱한 칼을 맞는 라이벌로 등장한다. 대국장으로 향하는 조훈현과 이창호가 탄 차를 운전하던 조 9단의 부인 정미화 역은 문정희 배우가 맡았다. 고창석, 현봉식도 맛깔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속 조훈현은 이창호라는 ‘긴 터널’을 지난다. 영화는 4년 전 촬영을 마쳤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재판으로 인해 그동안 창고에 묵혀져 있는 신세였다. 넷플릭스와 영화관 개봉을 저울질하다 막판에 개봉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번엔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심판이란 정치적 터널을 만났다. 극장 개봉을 밀어붙인 제작사의 수가 묘수가 될지는 관객들에게 달려 있다.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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