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르키예 경찰이 23일(현지시간) 이스탄불에서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해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유력한 대항마로 꼽혀온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54)이 최근 테러 혐의 등으로 체포된 와중에 야권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적 제거’를 위한 표적 수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도 거세지고 있다.
튀르키예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23일(현지시간) 대선 후보 경선을 진행한 결과 이마모을루 시장을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비당원도 표를 던질 수 있는 개방형 투표로 진행된 이번 경선에서 단독 출마한 이마모을루 시장은 약 1485만표를 득표했다. CHP는 “이 가운데 1321만1000표가 비당원이 연대의 뜻으로 투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 81개 도시에서 치러진 이번 경선은 투표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몰리며 당초 예정했던 시간을 세 시간 반 넘겨 끝났다고 CHP는 전했다.
이마모을루 시장의 선출이 유력한 CHP 경선을 불과 나흘 앞두고 그가 수사 당국에 긴급 체포되며 튀르키예에선 표적 수사 의혹이 일었다. CHP는 이마모을루 시장의 체포에도 당내 경선을 예정대로 치르겠다고 예고하며 비당원 시민들도 투표에 참여해 연대의 뜻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이마모을루 시장도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그들(에르도안 정권)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민주적 투표권을 매우 두려워한다”며 동참을 요청했다.
다만 CHP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어도 그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마모을루 시장의 체포 하루 전 모교인 이스탄불대학교는 그의 학사학위를 취소하며 대선 피선거권을 박탈했다. 튀르키예에선 학사 학위가 있어야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튀르키예의 다음 대선은 2028년에 예정돼 있으나, 조기 대선이 열릴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3연임 제한에 직면했는데, 그가 재출마를 위해 조기 대선을 실시해 임기 만료 전 한 번 더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일 경찰에 긴급 체포된 이마모을루 시장은 이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로 이스탄불 교외 실리브리 교도소로 이송됐다. 그의 시장 직무도 정지됐다. 그는 변호사를 통해 엑스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우리 민주주의에서 검은 얼룩을 지울 것이며,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테러 조직으로 지정된 쿠르드족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지원하고 협력한 혐의, 지난해 3월 지방선거 과정에서 사업가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체포됐다.
여권이 참패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마모을루 시장은 차기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22년 장기 집권을 끝낼 유력한 대항마로 꼽혀 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지율을 앞서 왔다.

23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경찰이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최루액을 발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대 정적을 체포한 데 따른 역풍도 거세지고 있다. 체포 닷새째인 이날도 이스탄불과 앙카라 등 튀르키예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당국의 시위 금지령과 최루액, 물대포, 고무탄 등을 동원한 강경 진압에도 반정부 시위는 더욱 불붙는 모양새다. 알리 예를리카야 튀르키예 내무장관은 24일 “지난 19일부터 23일 사이 불법행위로 1133명이 구금됐다”고 엑스에 밝혔다.
정부는 시위 금지령과 함께 소셜미디어 단속도 강화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법원 명령을 통해 튀르키예내 언론사와 기자, 정치인, 학생 등이 소유한 엑스 계정 700여개를 폐쇄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엑스 측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불법적 조처라면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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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모을루 시장 체포 후 금융시장도 수일째 요동치고 있다. 그가 체포된 직후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와 증시가 폭락했으며,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리라화 방어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해 지난 19일에만 115억달러(약 16조8000억원)를 투입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23일 시중은행과 회의를 열어 잠재적인 시장 변동성과 향후 조처 등을 논의했다. 당국은 이날 추가적인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모든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고 자사주 매입 규정을 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