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전환을 도모하지 않고도 이대로 괜찮을까? 지금의 경로에 갇혀 그대로 간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국민연금 개혁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는 노후불안과 빈곤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전환을 도모하는 데 실패한 개혁이다. 1988년에 국민연금이 만들어졌지만,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는 노후불안의 경로를 벗어나질 못했다. 국민연금은 낮은 수준의 보장으로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고, 어떤 생애과정을 거치든 대다수에게 노후불안은 필연이 됐다. 노후의 경제적 불안정이 만연한 곳에서는 노후뿐 아니라 전 생애가 문제가 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으로 내몰리고, 약간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몰두하게 된다.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혁신도, 모험도 심지어는 사랑도 어렵다.
2025년 연금개혁은 이러한 노후보장 경로의 지속과 전환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사회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번 개혁에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를 43%로 약간 올리지만, 내는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크게 인상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이 개혁은 1998년 이래 수십년 동안 이어져온 축소 일변도의 연금개혁 흐름을 멈춘 것이기는 하다. 70%에서 출발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60%로, 다시 40%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보면 이번 개혁은 노후보장 면에서는 절충과 방어에 불과하다. 연금액 인상 폭은 미미해 그 효과는 제한적이다. 이대로 가면 2040년, 2050년에 연금을 받을 이들이 받을 연금은 지금 국민연금을 받게 되는 사람보다 더 낮아질 예정이었으나, 약간의 급여 인상을 통해 국민연금 수준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는 것을 막게 된 정도이다. 미래 국민연금은 제대로 올라가기보다는 지금 정도의 낮은 수준에서 갇히게 됐다. 경로는 전환되지 않았다.
출산 크레디트와 군 복무 크레디트 확대 폭도 크지 않다. 특히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이라 말하면서도 협소한 재정 논리에 갇혀 군 복무 전체 기간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국민이 경험하는 권리와 자유의 제한과 사회적 기여를 고려한다면 부당하기까지 하다. 크레디트를 확대하면 소득대체율을 덜 올려도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확대 폭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연금개혁 시민공론화에서 다수안이었던, 소득대체율 50%로 대표되는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 주장은, 소득재분배 효과를 가진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 오래된 노인빈곤사회 경로에서 벗어나 보자는 것이었다. 생애 후반기의 안정성을 높이면 생애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가 열망해온 경로 파열과 전환의 바람은 무산됐다.
이런 미흡한 국민연금 인상마저 일부 정치인들은 미래세대 약탈이라 말한다. 이들은 국민연금을 깎을수록 미래 연금지출이 줄어드니 미래세대에게 좋다고 한다.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서 향후 국민연금 수준이 자동으로 삭감되도록 하자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은 국민연금을 줄이고 사연금을 강화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 결과 미래세대의 노후보장은 더 위태로워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주장은 연금재정에 대한 왜곡된 견해에 기초한다. 사회보장제도인 국민연금 재정은 가입자들이 n분의 1로 부담하는 제도가 아니다. 보장 수준을 높이고 재정 규모가 커지면 ‘능력에 따른 부담 원칙’에 따라 가입자뿐만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재정 책임이 커지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과 자본의 추가적인 기여가 이뤄지고 있다.
미래세대 노후보장에 대한 고민 없이 국민연금 축소만 주장하는 단견, 사회를 바꿔내려는 의지의 부재가 이런 연금개혁을 가져온 듯하다. 이런 개혁으로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