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정태춘(오른쪽)과 박은옥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2025 정태춘 박은옥 문학프로젝트 ‘노래여, 벽을 깨라’ 기자간담회에서 열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날의 상황에서도 야만의 벽을 돌파하는 힘을, 지성의 힘을, 양식의 힘을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굴곡진 현대사를 노래로 맞서온 포크 가수 정태춘씨(72)와 아내 박은옥(69)씨가 13년 만에 새 앨범을 낸다. 정씨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 음반을 내는 소회를 밝히며 이같이 밝혔다. 두 사람이 이번 활동에 ‘노래여, 벽을 깨라’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도 이런 이유라고 했다. 상식과 고정관념의 벽, 격식과 규범의 벽, 독점과 차별의 벽, 장르의 벽, 두려움의 벽 등을 부수자는 생각이 담겼다고 했다.
정씨는 음반을 낸 이유에 대해 “내 안에서 노래가 나왔고 그걸 들려주고 싶었다. ‘정말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 하나였다”고 했다. 그는 2019년 다큐멘터리 ‘아치의 노래, 정태춘’에서 “이제 더 이상의 새 노래는 없을 것”이라고 했던 터다. 박씨는 “어쩌면 우리에게 마지막 음반일 수도 있다. 다시 태어나면 또 음악인이고 싶다”고 했다. ‘정태춘·박은옥’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한 지 올해로 45년이 됐다.
이들은 내달 12번째 정규앨범 <집중호우 사이>를 공개한다. 2012년 발표한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이후 13년 만이다. 수록곡은 총 10곡이다. 8곡은 정씨가 2곡은 박씨가 노래한다.
정씨는 “어떤 평가가 내려지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한동안 (작업에) 몰두를 했던 노래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밥 딜런의 가사집을 읽고 노래를 찾아 들으며 “내가 이제까지 알았던 밥 딜런이 아니구나 생각했다”며 “(밥 딜런이) 나에게 자극을 주고 다시 노래를 만들 수 있는 동인을 줬다”고 밝혔다.
박씨는 “노래를 들었을 때 ‘역시 이 사람은 참 다른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앨범 수록곡 ‘집중호우 사이’에 대해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내가 흠뻑 비를 맞고 있는 느낌이 든다”며 “그 빗속에서 몸만 젖는 게 아니고 마음까지 다 젖어드는 느낌”이라고 했다.
정씨는 시대가 마주한 벽을 음악으로 돌파하는 저항 가수였다. 1978년 <시인의 마을>이라는 서정적인 곡으로 데뷔했지만, 1980∼1990년대 거리집회에 참여하는 등 군사독재 정부와 맞섰다. 1990년 대 음반 사전심의 제도를 거부하며 비합법 음반인 <아, 대한민국···>을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그를 기소했고, 정태춘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내는 등 사전심의 폐지 운동을 펼쳤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가요 사전심의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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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이날 무대에서 ‘92년 장마, 종로’ 라이브를 선보였다. 이 곡은 정씨가 발표한 두 번째 비합법 음반 수록곡이었다. 정씨는 “이번주가 슈퍼위크라더라. 외손녀에게 ‘이번주가 슈퍼위크래. 월요일에 뭐도 있고 뭐도 있는데, 화요일에 할머니 할아버지 기자간담회가 있어. 그러니 정말 슈퍼위크 아니야?’라고 했다”며 웃었다. 33년의 세월이 지난 노래는 ‘합법적으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번 앨범은 두 사람의 2025년 문학 프로젝트 ‘노래여, 벽을 깨라’의 하나로 발매된다. 5월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 ‘나의 시, 나의 노래’가 열린다. 6월에는 붓글전 ‘노래여, 노래여’가 개최된다. 정씨의 노래 시집 ‘집중호우 사이’와 붓글집 ‘노래여, 노래여’도 출간된다. 1994년 한울출판사에서 발행된 노래집 ‘정태춘’·‘정태춘 2’도 31년 만에 복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