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제도는 국민이 존엄성을 지키며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다.”
미국 최초로 공적연금을 도입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이다. 우리는 지금 노후에서 가장 중요한 연금 문제 앞에서 기로에 서 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근본적 해결책보다는 단기 대책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 논의가 부족한 점이 문제다. 국민연금 하나만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기존 9%에서 13%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높이기로 합의했다. 이는 연금 재정을 보전하고 국민연금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조치지만, 절반의 성과일 뿐이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현재 1200조원 수준인 국민연금 기금은 이번 조치로 기금 소진 시점이 9년이 늘어 2064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모수 개혁(Parametric Reform)은 국민연금의 근본 틀은 유지한 채, 연금의 주요 변수를 조정하여 재정을 안정시키는 방식이다. 즉, 보험료율, 지급 연령, 소득대체율 등의 숫자(모수, parameter)만 조정하는 개혁이다. 그러나 문제의 진정한 본질은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대비하려는 인식 자체에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적연금 의존도를 낮추고, 사적연금 활성화를 통해 노후 대비를 다변화해왔다.
스웨덴은 공적연금을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하고,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프리미엄 펜션’을 도입했다. 이는 개인이 연금 자산을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독일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점진적으로 낮추는 대신, ‘리우터 연금’ 같은 사적연금 가입을 국가가 보조하는 방식으로 개혁했다. 즉, 공적연금을 축소하면서 사적연금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구조 개혁을 이루었다.
일본 또한 공적연금 개혁과 함께 기업연금 및 개인연금의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사적연금 가입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401K 연금 제도는 기업과 근로자가 함께 연금을 마련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도 국민연금 개혁을 넘어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사적연금 시장 규모는 8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대부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으며, 연평균 수익률도 1~2% 수준에 불과하다. 은행과 보험사가 판매하는 상품은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는 수준이다. 반면, 투자형 상품(연금저축펀드, IRP, DC형)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여전히 낮다. 많은 사람들이 연금은 무조건 안전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결국 사적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적극적인 투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조정 같은 모수 개혁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다 근본적으로 퇴직연금의 전면 의무화, 모든 근로자의 퇴직연금 자동 가입 등이 실현되어야 한다. 개인연금 가입을 장려하기 위해 세제 혜택을 확대하고, 특히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 보조금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서 연금 사각지대를 줄이고, 보다 많은 사람이 안정적인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퇴직연금이 일시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노후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연금 지급 방식을 월 단위로 조정하는 제도적 강제 장치가 필요하고, 스웨덴처럼 연금 급여 및 보험료를 경제·사회·인구 변화에 따라 자동 조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제 국민연금 개혁은 모수 개혁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보다 폭넓은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연금 하나로 노후를 대비하는 시대는 끝났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공적연금과 함께 균형을 이뤄야 한다. 국민들도 스스로 연금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워런 버핏은 “절대 하나의 수입원에만 의존하지 마라. 반드시 두 번째, 세 번째 수입원을 만들어라. 연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제 연금 개혁의 본질을 정확히 짚고,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설 때다.

이윤학 프리즘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