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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도 사람도 망치는 ‘폐농약’, 물걸2리 주민들이 나섰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2리 한 쓰레기 수거함 앞에 폐농약병이 놓여 있다.  삼삼은구 제공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2리 한 쓰레기 수거함 앞에 폐농약병이 놓여 있다. 삼삼은구 제공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2리 토박이 이예구씨(73)는 마을 쓰레기를 한데 모으고 분류하는 쓰레기 ‘모아지기’다. 이씨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모아지기’ 업무를 맡아 일주일에 3번 출근하고 29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이씨의 일터는 물걸2리 마을회관에 마련한 분리 수거장(클린하우스·텃밭모아)이다. 그는 여느 쓰레기보다 폐농약병을 주의 깊게 다룬다. 물걸2리가 지난해 10월부터 ‘숲과나눔·사랑의열매 초록열매 성과확산 프로젝트’ 일환으로 ‘폐농약·폐농약병 회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농촌에서 폐농약병 처리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농약 사용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예전보다 날이 더워지다보니 병해충이 더 많아졌다”며 “안 쓰면 벌레 때문에 작물이 여물지 않기 때문에 약을 더 많이 쓴다”고 말했다.

물걸2리에서 폐농약병을 자루에 담아 수거·보관 중이다. 반기웅 기자

물걸2리에서 폐농약병을 자루에 담아 수거·보관 중이다. 반기웅 기자

현행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폐농약’에 대한 수거·처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법에 책임 주체가 정해져 있지만 실제 폐농약에 대한 수거·관리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실태조사를 보면 2023년 기준 폐농약 수거·처리를 시행하는 지자체는 전국 228개 중 86개(37.7%)에 불과하다. 그나마 86개 지자체 중 22곳은 수거 실적이 없고, 18곳은 수거량이 500kg을 밑돈다.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개인이 직접 폐기물 처리업체에 맡기거나 종량제 봉투에 배출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개인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권고하는 셈이다.

다 쓴 농약병 처리도 주민 몫이다. 폐농약병 수거·관리 주체는 한국환경공단으로, 마을에서 빈 농약병을 모아두면 환경공단에서 수거해 무게에 따라 마을에 수거 보상금을 지급한다. 이 또한 고질적인 예산 부족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통상 환경공단에서 수거한 폐농약병 꾸러미에는 빈 농약병과 일반 플라스틱 용기가 섞여 들어오는데, 공단에서는 별도 분류 작업 없이 무게에 따라 일괄적으로 보상금을 지급한다.

이렇다 보니 생산한 농약병보다 회수한 농약병이 더 많이 나온다. 일반 플라스틱병도 폐농약병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만큼 보상금 예산은 빨리 소진된다. 잔존 농약처럼 폐농약병을 손쓸 방도가 없는 것도 문제다.

물걸2리 ‘모아짱’ 최종화씨가 쓰레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물걸2리 ‘모아짱’ 최종화씨가 쓰레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방치된 폐농약·폐농약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걸2리 주민들은 직접 쓰레기 문제에 뛰어들었다. 오래된 문제였지만 해결책은 단순했다.

먼저 폐농약을 수거해 1년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마을회관에 만들고 관리할 인력 ‘모아지기’을 구했다. 마을 쓰레기 관리를 총괄하는 책임자 ‘모아짱’도 정했다. 모아지기 3명은 날짜별로 당번을 정해 쓰레기를 분류·관리한다. 모아짱은 거동이 불편한 가구를 주1회 방문해 직접 쓰레기를 수거한다.

2023년 10월부터 2024년 2월까지 마을 주민들은 폐농약·폐농약병 수거 캠페인을 벌였다. 4개월여 실험 기간 물걸2리에서 모은 폐농약은 10ℓ, 폐농약병은 310kg이다. 환경공단에 따르면 그간 물걸2리의 연간 폐농약병 수거량은 약 160kg이었다.

물걸2리 모아짱 최종화씨(73)는 “우리 마을 뿐 아니라 내촌면 14개 마을이 모두 수거 공간을 만들고 각자 책임자를 정해 폐농약을 관리한다면 농약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는 금방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촌 쓰레기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와 연계돼야 지속 가능하다고 했다. 공동체의 선의에 기댄 자원봉사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씨는 노인 일자리 사업 중 노인역량 활용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이번 달부터 월 60시간 일을 하고 76만원의 임금을 받는다.

물걸2리 마을 순환 텃밭 ‘모아’를 운영하는 김인호 삼삼은구 대표는 “폐농약, 폐농약병 관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간과 사람이 필요하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마을 공동체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일자리가 생기면서 주민들도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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