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오스카상을 수상한 팔레스타인 감독 함단 발랄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체포된 지 하루 만인 25일(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지구 키리야트 아르바의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정착민들로부터 집단적인 공격을 받은 뒤 이스라엘군에 끌려갔던 팔레스타인 감독이 25일(현지시간) 체포 하루 만에 석방됐다. 자기 땅에서 쫓겨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노 어더 랜드>로 최근 오스카상(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함단 발랄 감독은 수상 이후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이 급증했으며, 군에 구금된 와중에도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밝혔다.
AP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전날 서안지구 수시아의 자택에서 이스라엘인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뒤 군에 체포됐던 발랄 등 팔레스타인 3명이 이날 석방됐다. 발랄은 얼굴에 멍이 들고 옷에 여전히 피가 묻은 채 풀려났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발랄은 이스라엘 군 기지로 끌려가 24시간 내내 눈이 가려진 채 군인들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히브리어를 모르지만, 군인들이 나를 ‘오스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면서 “그들이 나를 특별히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농부이자 감독인 그는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어온 폭력과 추방을 기록한 <노 어더 랜드>를 공동 연출해 이달 초 오스카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군은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돌을 던진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고 밝혔으나, 발랄은 혐의를 부인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오히려 복면을 쓴 유대인 정착민 20여명이 그의 집과 마을에 몰려와 집단 구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발랄은 “그들은 내 머리를 축구공처럼 걷어찼다”고 말했다.
발랄과 그의 동료들은 <노 어더 랜드>가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등 명성을 얻은 뒤 이스라엘군과 정착민들의 폭력이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격을 주도한 사람은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위협해온 것으로 악명이 높은 유대인 정착민 셈 토브 루스키로, 발랄의 아내는 그가 이끄는 무리가 발랄을 구타하고 가족들을 겨냥해 돌을 던졌다고 증언했다. 발랄의 자동차와 집의 물탱크도 파손했다.
지난해 발랄이 촬영한 영상에서 루스키는 발랄 가족의 땅에 들어와 “이건 내 땅이다. 신이 내게 이 땅을 줬다”고 주장하며 발랄이 곧 악명 높은 이스라엘 군교도소인 스데 테이만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지난해 이 교도소에선 군인 5명이 팔레스타인 수감자를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됐는데, 루스키는 이 사건을 거론하며 “더 고귀한 목적을 위한 강간”이라고 조롱했다. 루스키는 AP통신에 자신은 발랄을 구타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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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하며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자국민을 집단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점령을 확대해 왔다. 현재 약 70만명의 유대인 정착민이 27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과 서안지구에서 살고 있다. 국제사회는 서안지구 내 정착촌 건설을 ‘불법 점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 이후 오히려 정착촌을 확대하고 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 정부가 나서 정착민들을 무장시키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한 폭력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날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성명을 내고 유대인 정착민의 도 넘은 폭력 행위와 이를 비호하는 이스라엘군과 경찰을 규탄하며 폭력행위 주동자를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