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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 취약한 노인, 이번에도 대형산불의 희생양됐다

경북 북동부권 산불 사망자 19명 중 상당수가 노인

집에서, 혹은 대피하다 사망…치매 노인은 실종

전문가들 “안전문자 도움안돼, 직접 대피시켜야”

의성에서 22일 발생한 대형산불이 닷새째 이어지고 있는 26일 단촌면 하화리에서 산불을 피해 대피했던 주민들이 전소된 집으로 돌아와 불에 타지 않은 살림살이들을 꺼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의성에서 22일 발생한 대형산불이 닷새째 이어지고 있는 26일 단촌면 하화리에서 산불을 피해 대피했던 주민들이 전소된 집으로 돌아와 불에 타지 않은 살림살이들을 꺼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 21일부터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어김없이 재난 취약계층인 노인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 대부분이 70대 안팎의 노인들이다. 대피 중에 사망하기도, 집에서 사망하기도 했다. 대형 재난·재해 시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재난대피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북 북동부로 번진 대형산불로 인해 사망한 19명 중 대부분이 60~80대 주민들로 파악되고 있다.

안동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쯤 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한 주택에서 80대 남성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남성이 발견된 주택은 산불로 인한 화재로 다 타버린 상태였다. 지난 25일 오후 6시쯤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에서는 8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은 긴급대피를 하던 중 불을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같은날 청송 진보면 시량리에서는 7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은 긴급대피를 도우려 집을 찾아온 마을 이장에 의해 발견됐다. 사망자 수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진보면 기곡리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던 80대 여성 1명이 실종되기도 했다.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요양원 환자 4명을 싣고 피신하던 차량에 불이 붙어 폭발하면서 80대 환자 3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고령의 주민들은 대부분 민가로 번지는 산불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집에서 사망하거나 집을 벗어나 대피하다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의성 산불 현장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사망 원인은) 현재 조사 중에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말씀드리기 이르다”면서도 “교통사고로 인해 대피를 못 하거나 불이 빨리 번지면서 대피를 하지 못한 상황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2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1리 계곡 마을에 주차된 차량이 산불에 전소되어 있다. 석보면에서는 산불로 인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1리 계곡 마을에 주차된 차량이 산불에 전소되어 있다. 석보면에서는 산불로 인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재난안전 전문가들은 “도시에 비해 재난에 취약한 농·어촌 노인들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재난재해 시 최우선으로 발송되는 ‘재난안전문자’는 노인들에게 실질적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사회과학연구’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재난에서 첫 번째 위험은 재난의 안내가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안전안내 문자를 보면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지원 관련 내용은 따로 없다. 대피를 도울 인력과 구체적인 방법 등은 알려주지 않고, 대부분 각자의 힘으로 대피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대피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안전안내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의미다.

이재준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조교수는 “재난이 닥쳤을 때 도시거주 노인들은 농어촌 거주노인들에 비해 사망자 피해가 많지 않다는 점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어촌은 재난발생시 대비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며 “행정안전부가 농어촌 지역의 재난에 대비해 자율방제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지만 자율방제단 조차 대부분 노인들로 구성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재난이 닥쳤을 때 노인을 직접 찾아 대피를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르신들은 휴대전화에 ‘대피경로 안내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드려도 그게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인지능력도 떨어져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반드시 누군가 직접 도움을 드리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안내문자를 보내고 ‘알아서 대피하라’는 식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산사태든, 산불이든, 홍수든 노인이 주요 피해대상이 되는 결과는 똑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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