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우두머리와 관련자들이 대부분 명문 대학 또는 군경 엘리트 양성 교육기관 출신이라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교육적 시사점은 무엇일까.
오늘날 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체·덕·지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바탕으로 품성·인성을 함양하고, 전문성 신장(재능 계발과 학력 증진)에 힘쓰고 있다. 전문성은 진학·진로와 연계되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사회 진출 후에는 협력적인 의사소통이나 원만한 인간관계, 공동체 역량과 민주시민 의식 등 품성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능력은 있으나 품성은 결여된 사람이 사회 지도층이 됐을 때 공동체에 끼치는 악영향은 심각하다. 최근 내란 사태의 주범 또는 동조범의 면면을 보면 잘 드러난다. 대통령 주도의 불법 계엄 모의나 시행 단계에서 국무위원이나 군 장성 중 그 누구도 불법성에 대해 직위를 걸고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다.
탄핵 정국에서 난무하고 있는 비상식과 비정상적인 언어의 배설 행태를 보면서 철학의 빈곤과 사유의 결핍을 읽는다. 그들의 집단 도착 증상은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있다는 점이다. 나는 현 상황을 진보·보수 진영 간의 갈등이 아니라 상식과 비상식, 사유와 무사유의 대립으로 본다. 합리적인 보수는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나 진보 진영에 대한 건전한 견제 세력으로서 필요하다.
그렇다면 상식과 사유 회복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학교 교육이다. 학교 현장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강화하고, 비판적 사유를 내면화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지난해 서울시·경기도 교육감은 역지사지형 토론 수업의 도입·시행을 약속했고, 공동 수업의 첫 주제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다루기로 합의했다. 진보·보수 양 교육감 모두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적대적인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 해결 방안으로 학교 교육과정에 정치토론 수업의 도입을 약속한 것이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무지는 용서할 수 있어도 무사유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악의 평범성’은 타인의 현실에 대한 무감각 및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에서 비롯된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의 집행자가 된 것은 비판적 사유의 결핍과 철학의 빈곤, 즉 무사유 때문이다. 한국에서 ‘아이히만’이 출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지사지형 토론 교육과 민주시민 교육을 통해 학생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 협력적 의사소통과 공동의 문제 해결력, 정치 현실에 대한 균형감각 등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에서, 최근 학생 참여형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의 통합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확산해 5지선다형 평가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우리 학생들이 마음껏 책을 읽으면서 친구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고,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 교육 과정과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학생들의 비판적 사유와 창의적 사고력의 함양을 위해서나, 현행 고3 교실의 파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5지선다형 수능은 조속히 퇴출되어야 할 것이다.
비상계엄 국면에서 국회 진입을 시도하던 장갑차와 특전사 군인들의 총부리에 맨손으로 맞선 민주시민들, 이에 대한 군인들의 소극적인 대응과 망설임의 몸짓, 겨울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응원봉을 흔들며 흥겹게 탄핵 촉구를 외친 청년·시민들의 모습 등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와 희망을 본다. 정치 토론 교육과 민주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서 성장한 제2, 제3의 응원봉 세대가 만들 우리나라의 미래가 기대된다. 튼실한 시민 의식과 예리한 비판적 사유로 무장한 그들이 이끌어 갈 우리 사회는 상식과 사유의 풍성함이 가득할 것이다.

이욱희 전 서울사대부중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