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영덕 피해 ‘눈덩이’

검게 그을린 바닷가 마을 경북 영덕군 영덕읍의 바닷가 석리 마을이 26일 산불 피해를 입어 검게 그을었다. 연합뉴스
화매리·매정리 반 이상 전소
농기계·농작물까지 타버려
당장 생계 걱정에 근심 가득
“대피소엔 빵·우유밖에 없어”
“그냥 산불이 아니라 재앙이에요.”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에 사는 이대우씨(65)가 말했다. 이씨 앞에는 ‘집’이었던 건물이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는 전날 오후 5시50분쯤 시작된 화재로 휴대전화와 지갑만 가지고 탈출했다. 연기 때문에 가시거리가 2m도 채 안 되는 탓에 차로 마을회관에 가는 데 10분이나 걸렸다. 평소에는 2분이면 충분했다. 차 앞유리에 연신 ‘불비’가 쏟아졌다고 기억했다.
26일 찾은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와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는 마을 절반 이상이 전소돼 있었다. 주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냐”며 막막함을 표출했다.
집과 창고, 하우스 등 화매2리의 건축물 70%가량이 피해를 보았다. 집에서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올랐고, 마을 창고는 철로 된 얇은 외벽만 남아 바람에 “퉁퉁”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밭과 마을 앞 천변의 수풀도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모종 보호용으로 덮어둔 검은 비닐이 바람에 날려 나무와 건물 곳곳에 걸려 있었다. 주민 박의도씨(61)는 “불이 한 곳을 태운 것이 아니라 강한 바람을 따라 직선으로 질러갔다”며 “불이 날아다녀 가슴이 벌렁거렸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어제는 저쪽에서 불이 왔는데, 오늘은 이쪽에서 거꾸로 오는 것 아닐까 싶어 지금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했다.
영양군에서는 전날 화재로 주민 6명이 숨졌다. 화매2리 청장년회장인 황호진씨(66)는 “이웃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셨는데, 한 분은 집에서 돌아가셨고 다른 한 분은 행방불명됐다가 오늘 숨진 채 발견됐다”고 했다. 황씨는 “창고, 집, 하우스, 농기계까지 모두 타버렸다”며 “여기는 배추와 고추가 유명한데, 모종이 다 타버려서 나는 고사리나 꺾으러 가야겠다”고 했다.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도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이날 매정리 2차선 도로에는 차 한 대가 뼈대만 남긴 채 전소돼 있었다. 열기로 출입구가 휘어버린 한 주택의 계단에는 불타다 만 운동화 한짝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영덕군에서는 밤사이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매정리 주민 류호영씨(70)는 “전날 축구 전반전을 보고 밖에 나왔더니 하늘에서 불똥이 떨어졌다”며 “뭐 챙길 새도 없이 집사람이랑 뛰쳐나왔는데, 집 안에 있던 냉장고, 텔레비전, 이불, 옷 깡그리 다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김명희씨(65)는 “과수원에 약을 치기 위해 준비하는데, 머리 위로 축구공만 한 빨간 불빛이 떨어졌다”며 “처음엔 폭탄인 줄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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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혼란의 원인으로 군·면의 안내 부재를 꼽았다. 화매2리 이씨는 “이미 불이 나서 떠나고 있는데 대피 문자가 왔다”고 했다. 그는 “우왕좌왕하다 일단 이장님 말씀 따라 마을회관에 갔다가 그 뒤에는 석보초등학교로 이동했는데, 그때도 공무원 안내는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당장 먹고살 일에 대한 막막함을 표현했다. 김애자씨(74)는 “산불이 처음이어서 경험이 없으니까 무엇이 필요한지도 몰라 도와달라고 할 수 없다”며 막막함을 표현했다. 한 화매2리 주민은 “지금 (대피소인) 마을회관에는 빵과 우유밖에 먹을 것이 없다”며 “마을회관에도 식사 지원이 당장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