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비정전> 속 장국영. 경향신문 자료사진
‘만우절,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난 스타’ 장국영(張國榮·장궈룽). 이런 수식어도 이제 식상하다고 느낄 때쯤 어김없이 만우절이 다가왔다. 지구는 매일 스스로 한 바퀴 돌고, 매년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다. 영화 속 배우 장국영은 ‘청춘 스타’로 그렇게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남아있는 사람들만 22살을 더 먹었다. 2003년 4월1일 그가 세상을 등진 뒤로 스물 두 해가 흘렀다. 올해도 여전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10년, 20년 같이 꺾이는 해도 아닌데 그런 해 못지 않게 다양한 콘텐츠가 상차림처럼 펼쳐져 있다. 잊혀지지 않는 장국영, 그를 추억하는 일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
①2025년 상영관에 걸린 ‘청년 장국영’

영화 <열화청춘 리마스터링> 포스터. 엔케이컨텐츠 제공
올해 22주기를 기념해서는 장국영의 청년 모습이 잘 드러난 두 작품이 리마스터링을 거쳐 개봉한다. 장국영 스스로가 꼽은 영화 데뷔작 <열화청춘>(1982)에는 그의 20대 중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국영의 대표작인 왕자웨이(王家衛·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1990)의 프리퀄 또는 쌍둥이 작품으로 해석되는 영화다. 홍콩 뉴웨이브 영화의 선구자 담가밍(譚家明·담가명) 감독 작품이다. 장국영이 연기한 루이스는 자유롭게 사랑을 즐기고 우정을 나누지만 한편으로 세상을 떠난 라디오 DJ 어머니의 고별 방송 멘트를 듣고 또 들으며 불안한 미래를 달래고 사는 인물이다. 혼란스러운 정체성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당시 홍콩인의 기저에 깔려있던 정서다. 서극 감독이 연출한 <대삼원>(1996)도 재개봉한다. 젊은 가톨릭 신부 역할을 맡은 장국영의 사제복을 입은 모습이 신선하다. 두 작품 모두 31일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한다. 이에 앞서 29일 메가박스 성수에서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의 저자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이 참석하는 스페셜 GV도 개최된다.

영화 <패왕별희> 포스터. 롯데시네마 제공
장국영 연기의 정점을 보여준 <패왕별희>(1993)의 확장판인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도 때맞춰 개봉했다. 중화권 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의 원작에 15분이 추가되고 화질이 보완된 버전이다. 두 경극 배우의 삶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는 26일부터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상영 중이다. 롯데시네마는 ‘장국영 추모 굿즈’로 오리지널 포스터 이미지에 홀로그램과 유광효과를 삽입한 스페셜 아트카드를 준비했다.
②한국과 홍콩을 잇는 연극

연극 <굿모닝 홍콩> 공연 장면. 국립정동극장 제공
장국영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되는 창작 연극 <굿모닝 홍콩>도 중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장국영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장사모’ 회원들이 장국영 기일에 맞춰 홍콩을 찾았다가 현지 시위대와 조우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으로 장국영 영화와 노래에 대한 오마주가 곳곳에 등장한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대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뉴스를 본 작가가 극본을 써 만든 작품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으로 다시금 광장이 주목받는 한국의 현 시기와도 묘하게 겹친다. 다음달 6일까지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장국영 기일인 다음달 1일에는 이벤트도 준비했다. 연극 관객을 대상으로 <영웅본색>(1986) 상영회를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진행한다.
③안방극장에도 있다
극장까지 직접 찾아가는 열혈 팬이 아니어도 좋다. 안방극장 OTT에서도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검색되는 장국영의 출연작은 3편이다. <아비정전> <동사서독 리덕스> <해피 투게더>로 모두 왕가위 감독 작품이다. 홍콩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빠지지 않는 수작들이다. 왓챠에서는 31개 작품을 볼 수 있다. 홍콩 영화 좀 봤다면 알 만한 영화들이 빼곡하다. <영웅본색 1·2>는 물론 <천녀유혼2> <최가박당 5> <야반가성>에 <해피 투게더> 메이킹 필름 격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제로 디그리>까지 두루두루 볼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에는 장국영과 동시대에 활약하다 같은 해 세상을 떠난 매염방의 일대기를 담은 <매염방 디렉터스 컷> 5부작이 올라와 있다.
④‘가수 장국영’의 리즈 시절

신인 가수 장국영. 유튜브 캡처.
장국영은 배우 이전에 가수였다. 1977년 홍콩 아시아가요제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2위에 오르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대통령 윤석열이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불러 다시금 회자되기도 한 돈 매클레인의 원곡과 동일한 곡이다. 장국영은 ‘영원한 청춘 스타’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윤석열보다 4살 많고 가수 설운도보다도 2살이 많다. 56년생 잔나비띠로 주민등록상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동갑내기다. 유튜브에는 1980~90년대 한국 방송에 출연한 실황 영상이 꽤 있다. 1989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출연 영상을 보고 있자니 36년 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놀랍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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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늘 곁에 있는 장국영
장국영을 다룬 책도 꽤 많다. 앞서 언급한 주성철 편집장의 책을 비롯해 오랜 한국 팬이 그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기 <홍콩, 장국영을 그리는 창>(처음북스), ‘꺼거(哥哥·형 또는 오빠)’를 따라 다니다 교수까지 된 ‘성공한 덕후’가 지은 <아무튼, 장국영>(코난북스) 등이다. 경기 고양시 삼송역 인근에 있는 일명 ‘장국영 카페’인 ‘카페 레슬리’도 들러볼 만한다. 다음달 13일까지 그를 추억하는 작은 기념관을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