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방문해 산불 현황을 보고 받고 산불재난대응 특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서 한동안 주춤했던 추경(추가경정예산)안 논의가 산불 대응을 계기로 탄력받고 있다. 다만 여당은 야당이 삭감한 정부 예산안의 재난 대응 예비비 복원을 요구하고, 야당은 추경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예비비 복원에는 선을 그어 실제 합의에 이르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27일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정부 예산안에서 삭감한 재난 대응 예비비의 추경 편성을 재차 촉구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이번 산불 피해 지원에 (예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하절기 태풍·홍수 피해를 염두에 둔다면 재난 예비비 복구는 반드시 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예산 삭감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고, 예비비 추경 편성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재난 대응 예비비 추경 편성을 반대한다고 날을 세웠다. 김 정책위의장은 “고소득자, 저소득자 가리지 않고 돈을 뿌리자는 소비 쿠폰과 지역화폐 추경에는 목을 매는 민주당이 정작 예기치 못한 화마로 생명과 재산을 잃은 국민과 공무원을 위한 재난 예비비 추경에는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당 차원의 산불재난대응특별위원회도 출범시켰다. 특위에서 대형헬기 구매, 특별재난지역 확대, 재난 대응 예비비 증액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특위 위원장을 맡은 이만희 의원은 “특별재난지역이 네 군데가 있는데 안동·영양·청송 등까지 획기적으로 늘어야 할 것 같다”며 “추경이 이뤄지면 재난 관련 목적 예비비의 획기적 증액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산불 관련 추경 추진 방침을 밝혔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날 서울 광화문 인근 천막당사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초대형 산불로 최악의 국가 재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충분한 대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산불 추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진 정책위의장은 “여야가 모두 조속한 추경을 정부에 요구했고 산불 추경의 필요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기획재정부는 추경 편성을 위한 부처별 협의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추경안 제시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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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재난 대응 예비비 복원 요구에는 반대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경북 청송군 진보문화체육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재난 예비비가 충분하다. 필요하면 더 쓸 수 있다. 예산을 편성해서 쓰면 된다”며 “사람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정쟁을 한다”고 말했다. 진 정책위의장도 “여당은 산불을 빌미로 (재난) 예비비 2조원을 복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행정안전부에 재난대책비 3600억원이, 산림청에도 산림 재해대책비 1000억원이 편성돼 있다”며 “다시 정쟁만 일삼자는 저의를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자체 추경 제안에 국민안전예산으로 9000억원을 편성해 놓은 바 있다”며 “소방헬기·산림화재 대응장비 등의 예산 포함된 만큼 추경 논의를 지금 시작하면 된다”고 밝혔다.
추경 논의에 불이 붙었지만 여야의 접근법이 달라 난관이 예상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여부도 변수다. 민주당은 산불 대응책 마련을 논의할 여·야·정 국정협의회 의제에 마 후보자 임명과 추경을 함께 올려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앞서 국정협의회는 지난 10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마 후보자 임명을 거부하자 파행됐다. 추경안을 비롯한 민생 현안 논의도 멈춘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