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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

[김흥규의 외교만사 外交萬思]야만의 시대

우리는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가? 야만의 시대란 질서와 규범의 부재 상태를 의미하고, 상시적인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행위자들은 도덕적·규범적 제약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와 이익이 최우선이며, 이를 정당화하는 세상이다.

인류의 역사는 국내정치는 물론이고, 국제정치 역시 예측 가능하고 안정성 있는 질서를 추구해왔다. 이를 진보라 명명한다. 역사의 기록마저 거의 없는 중국 주나라가, 공자마저 자주 인용하고, 오늘날 중국의 형성에 막대한 역할을 한 것은 종법 질서를 통해 자연과 인간, 통치자와 피치자의 관계를 정리한 덕분이었다. 소위 말하는 오늘날 소프트 파워를 주도한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법가가 융성한 것은 법과 규범의 설정을 통해 당시 무질서한 국내사회에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서양은 중세 시대를 지나 신의 권위가 세속 권력에 주권을 양도한 이후 민족국가 체제 형성 과정에서 강대국들이 각축했다. 무질서한 혼돈과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현실주의는 강대국 간의 안정적인 힘의 균형이라는 기제를 통해, 자유주의는 합법적인 규범과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국가 행위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국제사회의 안정성을 가져다주려 했다. 냉전 시기에 수립한 유엔 체제, 탈냉전 이후 형성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질서는 이런 인류 노력의 집약체이기도 했다.

외교 유연성·회복 탄력성 동시 고려

트럼프 1기 이후 국제사회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적 목표가 단순한 대중 무역역조를 시정하거나 중국과의 전략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기존 체제의 근본적인 전환이다. 이는 진보의 방향이라기보다는 혼돈과 야만의 시대라는 과거 강대국 정치의 유형에 가깝다. 이성은 마비되고, 궤변과 완력이 우선한다. 우크라이나에 굴욕 강요, 가자 문제 처리, 파나마나 그린란드의 합병과 같은 트럼프의 주장들이 그 예이다. 자유주의 패권 질서의 상징과도 같았던 세계무역기구, 국제형사재판소, 파리기후협정 등도 내팽개쳤다. 전통적인 동맹이나, 규범과 도덕성의 제약들은 무시해버린다. 미국의 국익과 국가 역량의 재건이 최우선이다. 트럼프가 주도하고 있는 기존 국제체제에 대한 도전은 최근 유행하는 “우아한 위선의 시대는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로 잘 요약된다. 혼돈과 야만의 시대가 왔다!

강대국이 아닌 대부분의 국가는 18~19세기 혼돈과 야만의 시대에 희생자가 됐다. 강대국들도 1·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입었다. 그 결과 인류는 적어도 강대국이 무력과 자의로 약소국의 영토와 주권을 침탈해서는 안 된다는 유엔 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다. 이 체제 안에서 약소국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자결에 대한 원칙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제 이러한 보호막들이 사라지고 있다. 향후 러시아, 중국, 일본이 트럼프가 열어젖히는 새로운 강대국 권력정치 체제를 수용해 한국을 압박해 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엔 체제와 새로운 문명 질서의 최대 수혜자가 된 중국은 기존 체제의 고수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핵심적인 대외정책 원칙은 유엔 체제와 그 규범들을 준수한다는 것이다. 인류운명공동체론을 주장하고 세계 무역의 개방성과 다자주의적 기제의 수립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국가이익의 견지에서는 러시아 편이면서도, 일반 인식과는 달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러시아의 영토적 팽창주의는 지지하지 않았다. 기존 체제의 도전자가 돌연 수호자가 되고, 수호자가 파괴자로 돌변하는 현 세계는 혼란스럽다.

야만의 시대에 비강대국들의 대외정책이 가치외교니,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니 하는 규범적 사고에 갇힌다면 결과는 참혹할 것이다. 과거 전통적인 현실주의에서는 최강대국과의 동맹이 가장 효과적인 생존책이었다. 미국과의 동맹을 무조건 추종하고, 미국 주류가 주장하는 대중국 정책을 답습하면 합당한 중국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안보와 경제의 이분법적인 분리 속에서, 안보를 우선한다는 사고가 동맹에 부합했다. 사드 시기 정책 결정이 그러했고, 윤석열 시기에도 이러한 논법으로 버젓이 전문가연했다.

내부 문명성 수호가 약소국 생존법

이제는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점(點)적인 사고나 이를 시간과 행위자들에 적용해 연장시키는 선(線)적인 사고를 넘어,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이면서 시차를 고려하는 면(面)적이고 입체적인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외교의 유연성과 회복 탄력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대외정책 역시 소수의 믿음과 확신이 주도하는 무속의 영역에서 벗어나 과학과 공감의 영역으로 전환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한 계엄 시도 이후 지속되는 국내정치의 혼돈과 무기력은 현 국제정치 상황을 보는 듯하다.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난입한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법과 정치권은 이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체제와 리더십에 대한 깊은 불신과 혼돈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국내정치 역시 더 이상 규범과 문명의 상식이 아니라 이익·권력 연합을 형성해 강자가 생살여탈권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국내정치, 무속, 국제정치 세계의 구분이 없어졌다.

야만의 시대에 약소국의 생존법은 외부의 야만에 대해 내부 문명성의 수호로 대처하는 것이다. 공존을 위한 상식과 합리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다음으로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국민 내부의 다양한 파당들이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이 야만과 문명을 가를 것이다. 중기적으로는 갈라진 나라를 어떻게 통합하는가, 장기적으로는 무기력해진 나라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하는가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다. 무기력한 대한민국의 법체제와 제도,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시일야방성대곡’이 다시 울려 퍼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대한민국이 과거 아르헨티나나 필리핀보다 심각한 레바논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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