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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살인하라 말한다

법이 차별하라 말한다. 반도체 산업에 한해 주당 52시간으로 제한돼 있는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노동자의 건강이야 어찌 되든 처벌하지 않을 테니 더 본격적으로 착취하라 말한다. 법은 입 다물고 있을 테니 눈치 볼 것 없이 내키는 대로 하라 말한다. 노동자들은 아파도 모른 척하라고, 죽어도 신경 쓸 것 없다고 말한다. 반도체면 된다고, 대놓고 봐줄 테니 염려 말고 차별하라고 말한다. 이 법의 이름은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특별법)이다.

이제 법이 말한다. 아직 스무 살이 되지 않은 고등학생이 실습 중 독성 간 질환으로 실려 가도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더 성장하라고, 경쟁하라 말한다.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가 시력을 잃고 장기를 잃고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질릴 만큼 들어 이미 알고 있다고, 이제 더 놀랄 것도 없다 말한다.

법이 말한다. 반도체 노동자들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특별하고 특별해서 고통받고 아프고 죽는다고 해도, 구제할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근무시간을 연장하고 잠도 자지 말고 일만 하라 말한다. 이제 법이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실은 사람의 죽음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다고.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계속해서 돈을 벌고 경제를 살리라 말한다.

법이 말한다. 자연을 죽이라 명령한다. 땅과 물과 하늘이 오염돼도 돈만 더 벌 수 있으면 그만이라 큰소리친다. 소비자를 중독시키라 지시한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라고 떠민다. 법이 시킨다. 욕망을 자극해서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을 끊임없이 내놓으라고 부추긴다. 이제 법이 까놓고 말한다. 사람의 관심은 이제 더 이상 사람을 향해 있지 않다고 추동한다. 사람들은 이미 사람보다 제품을 더 사랑하지 않느냐고 유혹한다. 디지털 기기를 사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라 가르친다. 소비자 대신, 기업가 대신, 이제 법이 말한다.

법이 말한다. 스스로가 디지털 기기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만 잊으면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이번 기회에 법적으로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자며 꼬신다. 미래세대에게 디지털 중독을 유산으로 물려주라고 꼬드긴다. 법이 말한다. 자연도 죽고 사람도 죽는 시대의 현실 따위 잊으라 말한다. 그게 제일 속 편하다고 충동질한다. 너 하나 살아남기도, 네 가족 챙기기도 바쁜 세상.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 따위 죽음 따위 쳐다볼 것 없다 강변한다.

법이 대든다. 뻔뻔스레 소리친다. 사람 하나 죽는 게 대수냐고 일할 사람은 충분히 많다 말한다. 더 쓸 수 있어도 버리고 신제품을 사라고, 계속해서 낭비하고 오염시키라고 법이 명령한다. 네가 조금 더 편해진다면 자식들의 미래 따위 잡아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법이 변호한다. 우리 땅이 부족하니 타국의 땅에 바다에 버리자고, 오늘 버릴 쓰레기가 넘치면 자녀의 내일과 모레를 가져다 쓰자고 설득한다. 법이 말한다. 사람 하나, 강 하나, 소 한 마리 병들어 죽으면 어떠냐고 둘러댄다. 이것저것 더 생각할 필요 없다고, 신제품을 하나 더 사는 걸로 위안 삼고 잠들라 말한다. 법이 말한다. 법이 쇼핑하라 말한다. 계속 만들고 버려서 자연도 사람도 죽이라고 말한다. 법이 말한다. 법이 살인하라 말한다.

최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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