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에서 노동정책을 고민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됐다. 2015년 서울을 시작으로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들이 노동정책을 수립했다. 경기·광주·충남·부산·경남·제주 등 광역단체만이 아니라 경기 수원·성남·화성 등에서도 정책을 추진했다. 각기 지역 현실에 맞는 노동정책을 펼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조례 제정부터 기본계획 수립과 노동센터 운영 및 이해당사자와의 거버넌스까지 제도화되고 있다. 정책의 초점이 ‘고용’이나 ‘일자리’에서 ‘노동’으로 확장된 시기다. 고용의 질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동기본권 향상이 주된 의제다.
되짚어보면 초기에는 주로 고용 불안정이나 저임금 문제가 관심사였다. 청소년 아르바이트 권리 보호와 생활임금 도입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대표적이다. 지역별로 차별성을 위한 노력은 새로운 의제 모색으로 진화했다. 노동이사제부터 감정노동, 유급병가,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들 모두 지자체에서 시작해 중앙정부로 확대된 정책이다. 불안정 노동자를 위한 사회보험 지원도 지자체 성과 중 하나다.
최근에는 지역 산업 특성과 연동된 좋은 정책들이 많다. 제조업 도시에서는 노동안전지킴이 사업과 작업복 세탁소가 확산하고 있다. 이동노동자와 돌봄노동자 지원은 시민의 호응과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일하는 시민을 위한 조례를 제정한 경기 성남시와 서울 성동구 사례부터 광주 광산구의 시민참여형 사회적 대화 실험이 대표적이다. 특히 필수노동자 문제나 돌봄과 여성 경력보유 문제를 재구성해 국내 최초로 제도화한 성동구의 실험은 ‘정책이 만든 사회적 가치’로 그 의미가 크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접목한 노동정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면 좋겠다.
그렇다고 모든 정책이 확대되거나 활발하게 추진된 것은 아니다. 단체장 철학과 의지에 따라 제도의 지속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때론 의회의 비협조적 태도로 예산이 삭감되거나 좌초된 사연도 있다. 정책의 중요도와 필요성에 비해 제한적 사고의 틀에 갇혀 시도조차 못한 의제도 적지 않다. 격차와 차별 해소를 위한 구조적인 문제는 지자체에서 녹록지 않다. 자영업과 소상공인의 ‘민생’에는 관심이 많지만 성평등 임금, 노동시간 단축, 기후위기와 정의로운 전환, 노동안전·건강 등은 곁가지로 치부한다. 하지만 파편화되고 불평등한 노동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자. 우리가 참고할 사례들이 적지 않다. 독일 베를린은 매년 3월18일 하루 동안 여성은 21% 할인된 운임으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21%는 독일 사회의 성별 임금격차를 지적하기 위한 표현이다.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는 지난 4년 동안 주 4일제 실험을 했다. 북유럽 노르딕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유급노동을 해결하기 위한 고민의 출발이었다. 미국 뉴욕은 프리랜서 권리 보호와 배달플랫폼 노동자 최저시급을 추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아마존 물류센터와 같은 곳의 산업안전 기준을 강화하고 유급병가도 법제화했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유기적인 정책은 시민과 노동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반이 된다. 경쟁과 차별이 공정으로 뒤바뀐 현실은 정책의 실패와 지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 노동정책의 목표와 지향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지난 2월 임금노동자와 비임금노동자 1123명 조사 결과 10명 중 2명(21.2%)만이 한국의 노동정책이 국제적 기준에 부합한다고 인식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과 1944년 국제노동기구 필라델피아 선언의 핵심은 ‘차별받지 않는 노동’과 ‘인간의 존엄성’이었다. 윤석열 정부를 뒤안길로 하고 이제는 지난 10년 경험과 지혜를 모아 노동의 재구성을 고민할 시점일 듯하다. 지역에서부터 빈곤한 정치적 상상력을 넓히면 좋겠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