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이 벌어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에서 한 남성이 공습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했다. 지난해 11월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휴전 합의 이후 수도를 대상으로 벌인 폭격은 이번이 처음이다. 합의 이후에도 연일 사상자를 내며 위태롭게 이어져 온 양측 휴전 합의가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
레바논 국영 NNA 통신 등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남쪽 교외 다히예 지역을 폭격했다고 보도했다. 다히예는 헤즈볼라의 근거지로 알려진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내 무인기(드론) 보관 시설, 헤즈볼라 지휘소 등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다히예 지역을 포격하기에 앞서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 지역에도 공습을 가해 23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스라엘은 이날 새벽 레바논 영토에서 이스라엘 북부로 로켓 2기가 날아왔다는 발표를 한 직후 공습을 시작했다. 한 기는 이스라엘군이 요격했고, 한 기는 레바논 영토에 떨어졌다. 헤즈볼라는 로켓을 발사하지 않았다며 개입을 부인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데이비드 우드 레바논 수석 분석가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로켓 2기의 발사 주체나 경위를 조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즉각 공격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1월 미국과 프랑스의 중재로 이뤄낸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 합의는 이후 4개월간 위태롭게 유지됐다. 양측은 레바논 남부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은 접경지 거점 5곳에 전초기지를 유지한 채 휴전협정 위반에 대응한다며 레바논을 산발적으로 공격해왔다. 약 일주일 전인 지난 22일에도 레바논 영토에서 날아온 로켓을 이유로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접경 지역을 공습했다.
최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시리아와 레바논 등 중동 각지에서 휴전 파기를 불사하며 무력 충돌을 감행하고 있다. 헤즈볼라·하마스 등 반미·반이스라엘 무장단체의 약화라는 중동 내 역학 변화, 정권 유지를 위해 극우세력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 구도에 더해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 입장에선 거리낄 것이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18일 이스라엘 공습 이후 가자지구에서 921명이 숨지고 2054명이 다쳤다고 29일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월4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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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을 방조하는 데서 나아가 예멘의 후티 반군을 대상으로 직접 공격을 벌이며 이스라엘과 보조를 맞춰왔다. 최근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큰 논란이 된 민간 메신저 ‘시그널’ 채팅방 대화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후티 반군 공습’을 서두르자며 “이스라엘이 먼저 공격하면 우리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중동 부특사는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을 두고 “미국은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보조는 핵 협상에 비판적인 이란을 테이블로 끌고 나오려는 압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파리를 방문 중이던 조제프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다히예 공습은 프랑스와 미국이 중재한 합의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용납할 수 없는 공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