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열린 ‘언급되지 않는 청년 100인의 목소리’ 토론회는 광장 밖에 있던 청년 시민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탄핵 이후 시민들과의 소통 방안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인터뷰 참여 청년 중에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고 계엄 정국에서 벌어진 ‘줄탄핵’이라는 방식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 모두는 서울서부지법 폭동과 같은 극우주의 세력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인데도 인터뷰어의 “안심했다”는 소회는 현재 시국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토론에 참여한 서복경(현대정치연구소)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폭력과 차별을 당연시하는 ‘극단(extreme) 우파’와, 계엄령에는 비판적이지만 이후 정치적 대응에 대해 다른 입장이 확고한 ‘급진(radical) 우파’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비단 보수 성향의 청년만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침묵과 무능한 정치권에 실망해 시국 전반에 회의감을 품고 있거나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으로만 응원을 보내는 청년들도 상당수다.
극우주의자는 사실상 대화를 거부한다. 혐오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대상만을 일방적으로 지목할 뿐, 근거를 제시하거나 반응을 듣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문제는 대화 가능한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청년들에게 특정 대상이나 사상을 부정하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는 깊이 있는 사고나 경험이라기보다 ‘누군가의 말’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결과였다. 그러나 맥락과 원인을 차근차근 짚으며 대화를 이어가자 충분히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이 시국이 끝난 뒤 시민들에게 어떤 기억과 메시지를 남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광우병 촛불 집회를 떠올리는 청년 중 일부는 이명박 정부의 독선보다는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 논쟁만을 기억하며, 이후 시민사회에 대한 냉소가 생겼다. 박근혜 탄핵 이후 출범한 이른바 촛불정권의 모습은 또 다른 청년에게는 ‘결국 저쪽도 똑같다’는 회의감만을 남기기도 했다.
극우주의의 확산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들의 강렬한 메시지는 대중 사이에서 일정한 존재감을 유지할 것이다. 단지 청자에 불과했던 청년이 어느새 극우의 언어에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 전에, 우리는 먼저 그들과 어떤 언어로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계엄령 선포 당시의 불안과 위협, 공포를 극복하고 국가를 지켜냈다는 시민의 자긍심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연대의 목소리까지. 우리에게는 소중한 공통의 기억이 있다. 헌재의 시간이 끝난다면, 다음은 시민의 시간이다. 광장의 목소리를 시민의 언어로 다듬고, 이제는 광장 밖으로 향해야 할 때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