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딸 혼례품으로 빼앗긴 땅
일제강점기 거쳐 해방 이르기까지
농민들, 300여년 싸움 끝에 되찾아
세계서 유례 찾기 힘든 장기 항쟁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무려 3세기 동안이나 부단히 싸워서 승리한 농민운동이 있다. 대한민국 15대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섬 하의3도 농민운동이다. 신안의 하의3도(하의도·상태도·하태도) 농민들은 1623년 조선 선조 임금의 딸 정명공주 가문에 빼앗긴 땅을 무려 333년 동안이나 중단없는 싸움을 지속한 끝에 되찾았다.
대체 우리 역사에서, 아니 세계사에서 300년 넘게 농민항쟁을 이어가 승리한 사례가 또 있을까? 하의3도는 한국사뿐만이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빛나는 불멸의 섬이다. 하의3도는 섬이지만 농사가 많았다. 과거 육지 사람들이 섬으로 간 것은 어업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농사지을 땅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섬으로 들어가 황무지를 개간하고 간척을 하는 등 모진 고생 끝에 마련한 땅. 그래서 섬사람들의 땅에 대한 애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땅은 곧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이 자주 자기 땅을 되찾거나 지키기 위해 목숨 걸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땅을 잃는 것은 목숨을 잃는 일이었으니.
고려 말 삼별초의 난 이후부터 시작된 공도 정책으로 수백년간 버려져 있던 섬들의 농토는 황폐해졌다. 섬의 황무지들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들어가 정착한 사람들에 의해 개간되었고 또 간척으로 새로운 땅들이 생겨났다. 전쟁으로 재정이 고갈된 왕실은 세수 확대를 위해 섬 지역으로의 입도와 개간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조정은 새로 개간한 땅은 소유권을 개간한 자에게 주기로 약속하고 섬 정착을 독려했다. 하의3도에도 그렇게 사람들이 들어가 황무지를 다시 개간하고 갯벌을 간척해 옥토를 만들었다.
그런데 1623년, 인조는 섬 주민들에게 소유권을 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하의3도의 개간된 땅 24결(약 14만평)을 그의 고모 정명공주(1603~1685)가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내주고 말았다. 본래 조선왕조의 법전에도 미개간지는 개간자가 10년이 지나면 토지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어 있었지만 임금이 법을 무시한 것이다.
물론 조건을 달아 정명공주의 4대손까지만 세미(稅米)를 받는 수조권을 주었다. 하지만 정명공주가 시집을 간 홍씨 집안에서는 4대가 지나도 여전히 세미를 수탈해 갔다. 1729년 반환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섬 주민들에게 돌려주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4대가 지나자 홍씨 집안뿐만 아니라 관에서도 수조권을 주장하며 세금을 징수해 갔다. 한번 내는 것도 억울한데, 주민들은 홍씨 집안과 국가 양쪽으로 세금을 뜯기니 살아갈 수가 없었다. 일토양세(一土兩稅)였다. 오죽 원통했으면 하의도에 ‘양세바위’라는 이름의 바위까지 생겼을까.
그뿐이 아니었다. 정명공주의 5대손 홍상한은 섬 주민들이 새로 개간한 땅 140결(약 84만평)에 대해서까지 임금에게 수조권을 받은 것처럼 주민들을 속여 세미를 수탈해 갔다. 주민들은 경종 3년(1723)에는 한성부 소송, 영조 6년(1730)에는 사헌부 소송, 정조 때는 상경하여 왕에게 진정서를 내는 등의 방법으로 싸웠다. 하지만 세도가인 홍씨 집안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는 하의3도 땅의 소유권이 홍씨 가문에서 내장원, 조병택, 도쿠다 야시치, 신한공사 등으로 넘어갔다.
그때마다 주민들은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1909)과 농민조합운동(1928), 도세 납부 거부 등으로 맞섰으며 미 군정하에서도 소작료 불납동맹과 7·7 도민 봉기 등으로 항거했다. 그러다 해방 후인 1950년 2월13일, 제헌국회의 무상환원 결의를 이끌어냈고 마침내 1956년 불하 형식으로 땅을 되찾았다. 물경 333년간의 항거 끝에 되찾은 땅이었다. 장대한 항쟁의 승리였다.
이런 장기간의 농민항쟁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2017년에는 조선통신사 기록물과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2023년에는 동학농민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산림녹화 기록물도 등재를 앞두고 있다. 3세기 동안이나 중단없이 싸워 승리한 하의3도 농민운동 기록물의 가치가 이들보다 못하다 하겠는가?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하의3도 농민운동 기록물 또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이유가 충분하다. 이 소중한 역사를 묻어 두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국가유산청장은 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마땅하다.

강제윤 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