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직후 ‘멕시코·캐나다·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언론은 트럼프가 상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관세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분석을 쏟아냈다. 당시 멕시코는 불법 이주민과 마약류 단속을 위해 군인 1만명을 접경 지역으로 파견하겠다고 약속했고, 캐나다도 국경 보안 강화에 13억캐나다달러를 쓰겠다고 하면서 미국의 관세 한 달 유예 결정을 이끌어냈다. 캐나다·멕시코는 거래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스타일을 고려해 협상 카드를 제시했고, 이들의 접근법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후 벌어진 상황을 보면 트럼프와 두 나라 간에 거래가 성사됐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에 대한 25% 관세는 트럼프의 엄포대로 지난 4일 발효됐다. 이튿날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 적용 상품에 대해선 4월2일까지 관세를 잠정 면제하기로 했지만 여기 포함되지 않는 멕시코·캐나다산 수입품의 50~60%에는 그대로 25% 관세가 부과된다. 거래는 쌍방이 주고받는 것인데, 미국은 받기만 했고 캐나다·멕시코는 주기만 했다. 싱크탱크 독일 마셜재단의 페니 나스는 트럼프의 방식에 대해 “거래가 아니라 제국주의”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유럽에서도 트럼프와 거래가 쉽지 않으리라는 슬픈 예감이 커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당선인 신분이던 트럼프와 통화하며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당근’을 내밀었지만 이 제안은 트럼프에게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 듯하다. 트럼프는 지난 12일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유럽이 미국산 오토바이·주류 등에 최대 50%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하자 트럼프는 다시 프랑스·EU산 주류에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은 협상을 서두를 생각조차 없다. 트럼프가 취임한 이후 폰데어라이엔과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은 일단 현대차그룹이 지난 24일 2028년까지 미국에 21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는 방식으로 트럼프에게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그리고 이틀 뒤 트럼프는 다음달 3일부터 모든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물론 미국 내 생산되는 현대차는 관세와 무관할 것이고 트럼프는 현대차에 “고맙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당장 한국에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다. 한국은 대미 무역흑자 8위 국가라 상호관세 대상으로 공공연히 지목돼 왔다.
이쯤 되면 관세 부과는 무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트럼프의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는 무역수지 개선과 조세 수입 확대를 원하고 있으며, 관세를 이를 달성할 지름길로 여긴다. 그러나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관철하는 데 성공해도 이것을 미국의 승리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제 매체 블룸버그는 사설에서 “관세는 미국 기업이 제품을 수입할 때 내는 세금이고 궁극적으로 미국 소비자와 기업이 그 비용을 부담한다”며 “이는 가계 예산을 잠식하고 실질임금을 감소시키며 경제를 짓누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통계청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필립 크로스는 무역전쟁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으로 끝날 것이며 트럼프가 자멸하기를 기다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트럼프의 관세는 미국인에게 피해를 줄 것이고, 미국 소비자와 기업이 트럼프에게 관세를 철회하라고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썼다.
실제로 트럼프는 미국 내 여론에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캐나다·멕시코산 일부 상품에 대한 관세를 유예한 배경에는 자동차 업계의 로비가 있었다. 캐나다와 유럽이 대미 보복관세 목록을 만들 때 미 공화당 텃밭 지역의 특산품을 겨냥한 것도 미국 내 여론을 흔들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트럼프가 4월2일 발표할 상호관세 계획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은 조선, 방산 협력과 알래스카 LNG 개발 참여 등의 카드를 들고 트럼프를 설득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은 트럼프와의 거래가 불발될 경우 미국발 관세 충격파와 무역전쟁의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지를 계획해야 한다. 보호무역과 각자도생이 트럼프 2.0 시대의 국제 질서라면 이 혼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플랜 B를 찾는 수밖에 없다.

최희진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