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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비

[詩想과 세상]곡비
새벽부터 지붕 두드리는 빗소리에 귀가 열려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 불길 잡히면 또 하나 잡히겠지
앞이 보인다 싶으면
실핏줄 돌게 마련이지 하다가

왜 이 비는 타버린 폐허 위에 내리는가
왜 산불은 해마다 돌아오는가

처마 끝에 앉아서
꽃망울 터지고 연둣빛 틔워 올리는
앞산을 바라보는 눈길이 젖는다

은 비가 내리고
타버린 것들 위에 비는 내리는데

집안으로 들인 걸음마다 생기가 돌고
들판으로 나갈 모종판 챙기는 손길이 젖는데

산기슭 아래
속 시커멓게 내려앉아
젖지 못하는 사람들

함순례(1966~)


산불이 몇날 며칠 동안 지나간 곳의 마을과 숲은 온통 잿더미로 변했다.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산속의 나무와 동물들도 함께 울부짖으며 비를 기다렸을 것이다. 비가 곡비(哭婢)처럼 대신 울어주면 좋으련만.

곡비는 대신 울어주는 자. 시인은 곡비가 되어 타인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큰 불길 잡히면 또 하나 잡히겠지” 기대했지만, “뒤늦은 비”는 화마가 휩쓸고 간 잿더미 위에 내렸다. 시인은 “해마다 돌아오는” 산불로 새까맣게 타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다시 폐허 위에도 “꽃망울 터지고 연둣빛”을 틔워 올리는 산을 보며 사람들의 눈길은 촉촉하게 젖겠지.

불로, 거악으로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이 시대의 환란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주불을 완전히 꺼야 우리는 안전한 삶으로 돌아간다. 잔불이 우리 삶 속에 언제 어떤 불씨를 옮길지 모른다. 전소된 마을을 보며 서로가 서로의 곡비가 되어 대신 울어주는 밤. 잠깐 내리던 비는 “속 시커멓게 내려앉”은 사람들을 위해 울어주는 곡비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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