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하자, 군부가 다음해 2월1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다. 반세기 만에, 불안정하게나마 쟁취한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다시 무너졌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세 손가락 경례’로 저항했다. 군부는 평화적 시위조차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2021년 9월 반군부 민주진영인 국민통합정부(NUG)는 군부 정권에 전쟁을 선언했다. 내전이 본격화했다. 올해 1월 기준 수도 네피도와 제2 도시 만달레이 등 주요 도시는 정부군이 장악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론 반군의 통치 지역이 많다. 어느 쪽도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내전 중이다. 피란민만 300만명을 넘고, 전체 인구(5400만명)의 3분의 1이 인도적 위기에 놓였다.
지난 28일 미얀마 중부 내륙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다. 진앙에서 33㎞ 떨어진 만달레이 지역 피해가 극심하다. 고대 왕실 수도이자 불교 중심지인 이곳의 왕궁·사원과 주요 건물들이 무너졌다. 전기·식수 공급은 끊어지고 식량이 부족하다. 시민들은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있다. 4년간 내전으로 국가 의료·응급 시스템도 허물어진 땅에 지진이 덮쳤다. 31일 현재 사망자가 2000명을 넘었는데, 이마저도 반군 통치 지역 집계를 뺀 것이다.
피해가 커지자, 군부 정권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동안 각종 대형 재난에도 국제사회 지원을 한사코 거부하더니, 이번에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군부 정권에 우호적인 중국·러시아도, 대립각을 세운 유럽연합(EU)도 구조·구호 활동에 나섰다. 한국도 200만달러(약 29억원)를 지원키로 했다.
반군 진영의 NUG는 2주 동안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유엔·국제 비정부기구(NGO) 구조·구호 활동에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군은 지진 발생 후 반군 지역에 3차례 공습했고, 최소 7명이 사망했다. 외국 구조대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는데, 정부군은 반군 공격에 혈안이 돼 있다니 참담하다. 이런 비극 속에서도 미얀마 시민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국제사회 연대에 경의를 표하며, 미얀마 내전 해결을 위한 관심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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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달레이에서 31일 주민들이 강진으로 무너진 건물 안을 살펴보고 있다. 만달레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