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하면서 괜찮은 품질” 인식에
고물가 시대 ‘가성비’로 소비자 잡아
자영업자들 “상권 흡수해 생존권 위협”
“지나친 기업화, 규제 필요” 지적도

10대 여학생들이 한 다이소 매장의 화장품 코너를 구경하고 있다. 이성희 기자
“이러다 아파트도 팔고 자동차도 팔겠네.”
다이소가 기모 후드티와 긴팔티셔츠 등 의류 판매에도 나섰다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에 붙은 댓글이다. ‘천원의 행복’을 내걸고 물티슈와 종이컵 등을 판매하는 균일가 생활용품점으로 시작해 최근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건기식)까지 선보이며 새로운 ‘유통공룡’으로 등극한 다이소의 명암을 극명하게 나타내는 한마디이기도 하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달 중 발표되는 다이소의 지난해 매출은 4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매출은 3조4605억원, 영업이익은 261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 각각 18%, 9% 증가한 수치다.
매출 증가폭도 가팔라지고 있다. 다이소는 1997년 서울 천호동에 둥지를 튼 뒤 18년 만인 2015년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2022년 매출 2조9458억원을 기록, 1년 만에 3조원대를 기록하더니 또다시 1년만에 매출 앞자릿수를 바꾸는 것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전통 유통채널들이 전자상거래(e커머스) 공세에 밀려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잇따라 유동성 위기에 몰린 홈플러스와 티메프(티몬·위메프)와 비교하면 다이소의 건재함은 괄목할 만하다.
외형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다이소 매장은 2023년 기준으로 전국에 1519곳이나 된다. 10년 전보다 549곳(56%) 늘면서 소비자 접근성도 좋아진 것이다. 매장도 대형화 추세다. 지난해 말 부산 프리미엄 아울렛에 1320㎡(약 400평) 규모로 입점한 데 이어 경기 평택 고덕브리티시에도 2644㎡(약 801평) 규모의 초대형 다이소 매장이 문을 열었다.
성장 동력은 무엇보다 ‘가성비’다. 다이소 취급 상품은 3만여종에 달하지만 가격은 500원부터 1000원, 1500원, 2000원, 3000원, 5000원 등 6가지 균일가에 맞춰져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불명예를 불식시키고 소비자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생각보다 괜찮은 품질’이라는 신뢰를 심어준 것이 주효했다는 게 유통업계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다이소 창업주 박정부 회장도 저서 <천원을 경영하라>에서 “1000원짜리 상품은 있지만 1000원짜리 품질은 없다”며 “싸기 때문에 품질이 나빠도 된다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다이소 실적 추이
고금리·고물가 환경의 영향도 컸다. 가격경쟁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다이소를 찾는 발길이 이어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편의점들이 1000원대 상품을 선보이고 대형마트들도 자체브랜드(PB) 제품을 앞세워 초저가 경쟁에 나서고 있다”며 “현재 국내 상황은 장기간 실질임금이 물가상승세를 따라가지 못해 ‘100엔숍’ 등이 유행했던 일본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소비자 물가는 2020년보다 14.2% 오른 데 반해 같은 기간 실질임금은 0.8% 오르는 데 그쳤다.
다이소는 TV 광고를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신 ‘다이소에서 꼭 사야 할 꿀템’ 등과 같은 SNS 게시글과 입소문으로 특정 제품이 품절되곤 한다. 다이소 관계자는 “고객들 반응은 MD(상품기획자)들이 꾸준히 모니터링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이소는 판매가를 균일가에 맞춰놓고 제조업체와의 직거래 등으로 상품이 계속 나오게 투자하는 회사”라며 “균일가 정책은 초창기 때부터 지켜온 고객과의 약속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퀵커머스를 통해 영토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오프라인 매장 위주로 영업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인 다이소몰을 통해 오후 5시 이전에 주문하면 인근 매장에서 당일 배송해주는 ‘오늘배송’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선보이고 있지만, 서비스 지역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주부 이모씨(42)는 “다이소는 ‘블랙홀’ 같다. 매장이 눈에 띄면 홀린 듯 들어가서 ‘이런 물건도 팔았어?’류의 상품을 구입할 때가 많다”며 “무엇을 사려고 들어왔는지는 까먹고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도 다이소를 블랙홀에 빗대어 말한다. 취급 품목이 늘면서 모든 걸 빨아들인다는 것이다. 다이소의 경쟁 상대는 문구점, 철물점, 편의점, 올리브영(화장품점 포함)뿐 아니라 약국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타깃 대상도 청소년·주부·직장인·자취생 등 전 연령대를 아우른다.
한 자영업자는 “이젠 식품코너에서 체인점 죽 브랜드 제품까지 판매하더라”며 “몇 년 전만 해도 다이소 때문에 문방구와 철물점 등이 고사한다는 상생논란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비판조차 제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건기식 입점 논란은 다이소에 대한 소비자의 달라진 인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약사 김모씨(36)는 “건기식의 경우 다이소 판매 제품은 소분돼서 나와 함량당 가격은 약국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런데도 다이소가 신제품을 출시하면 다른 가격구조 등은 따지지 않고 그간 같은 카테고리를 취급해온 기존 채널이 폭리를 취해온 것처럼 질타를 당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건기식이 인터넷 쇼핑몰이나 직구, 편의점에 이어 다이소에서도 팔리면 약국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이소의 지나친 기업화를 우려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도 시장이 대기업 위주가 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쿠팡이 멤버십 가격을 올리는 것처럼 독점적 지위가 강화되면 선택권 제한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다이소가 규제 없이 무한정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직영점 중심으로 점포를 확대하는데 이는 대규모 점포와 다를 바 없다”며 “대형마트처럼 의무휴업을 적용하든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을 하든 일부 규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