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변론 종결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나도록 결론 없이 이어지자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전반에 불확실성이 짙게 드리웠다. 헌법재판소가 4월4일을 선고일로 예고하며 정치적 리스크는 일단 기한을 갖게 됐지만, 시장은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정치 갈등이 아니라, 구조적 경제 충격을 유발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고 있다.
3월31일 기준, 코스피는 급락하며 2481선으로 내려앉았고, 코스닥은 690선까지 밀려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 관세 발표로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가 각각 4.0%, 3.2% 하락한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시장을 더욱 압박한 것은 ‘탄핵 판결 지연’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었다. 여기에 공매도 전면 재개와 상호관세 발효 같은 외부 변수까지 겹치며 투자심리는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외환시장도 민감하게 반응 중이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75원까지 치솟았다가 1472원에 마감했다. 씨티그룹은 탄핵이 인용될 경우 3개월 내 환율이 1450원대로, 6~12개월 내에는 1435원대까지 안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 시장은 방향이 아닌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결론이 미뤄질수록 불확실성 프리미엄은 커지고, 한국 경제의 위험도는 상승한다.
채권시장 역시 요동치고 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토지허가제 정책 발표, 철회 혼선과 함께 서울 아파트 가격이 반등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퍼졌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주 대비 5bp(1bp=0.01%포인트) 오른 2.637%로 마감됐다. 기업과 가계의 자금 부담은 늘어나고,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더 우려스러운 신호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다. 한국의 신용위험을 반영하는 이 지표는 다시 오르고 있다. 아직 신용등급 하향은 없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미 한국의 정치·경제적 불안 요소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1.8%에서 1.4%로, S&P는 2.0%에서 1.2%로, 골드만삭스는 1.8%에서 1.5%로 낮췄다.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수출은 트럼프식 보호무역주의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금리 인하 여력이 좁아진 상황에서, 지금은 재정이 나서야 할 시점이지만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필자는 올해 초부터 25조원 규모의 추경이 시급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지난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감된 예비비·국채이자 복원 2조9000억원, 경기하락 대응 12조9000억원, 세수 결손에 따른 세입경정 10조원 등을 종합한 수치다. 다행히 여야 정치권도 최근 그 필요성에 공감하며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기재부는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경’을 3월30일에야 발표하며 늑장 대응을 보였다. 추경 규모는 턱없이 부족했다. 시장이 정부의 결단을 기다리는 동안, 기재부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기재부의 태도다. ‘국회가 논의하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정책 결정 주체의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다. 위기를 인식하고도 행동하지 않는 것은 무대응보다 더 나쁘다. 침묵하는 재정은 위기의 공범이 될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시장 전반을 흔드는 시기엔 재정의 기민한 대응이 필수다.
그사이 서민과 소상공인들은 이미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소상공인 경기전망지수는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개인사업자의 대출 연체가 빠르게 늘고 있으며, 자영업자 전체로 보면 금융권 연체 규모가 역대 최고 수준이다. 고금리와 내수 부진, 수수료 부담까지 겹치며 자영업자의 재무건전성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실물경제의 최전선에서 버티던 이들이 더는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르고 있다. 봄은 달력 위에만 와 있을 뿐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지금 한국 경제는 여전히 긴 겨울 속에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시장의 신뢰를 흔들고, 기재부의 소극적 대응은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이제 결단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는 4월4일 ‘12·3 내란’이라 불리는 사안에 대해 신속·명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 한 반헌법적 시도에 대한 법적 판단만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걷어낼 수 있다. 기재부가 더는 머뭇거려선 안 된다. 정부 재정은 위기 때 쓰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이 그때다. 추경 규모를 다시 설정하고, 속도감 있게 실행해야 한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그 대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